치맥과 소맥을 넘어서, 한국 맥주의 변천사 우리는 어느시대의 맥주를 마시고 있을까?

신은 우리에게 맥주를 내려주셨다. 하지만 다양하고 맛있는 맥주를 만드는 방법은 깜빡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간혹 사람들은 국내에서 맥주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의 맥주역사는 양파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런데 맥주의 맛이 아니 대체 왜… 최선입니까?

갑자기 시작된 의문 때문에 오늘 마시즘은 우리나라 맥주의 시대별 변천사에 대해 알아본다. 그 옛날 조상님부터 아재들과 형제들은 맥주를 어떻게 즐겼을까?

1세대 맥주(1876~1970) : 맥주 식민 시대, 있으나 마시진 않았다

(국내 최초의 맥주공장, 사진출처 : 1937년 조선총독부 조선신궁 어진좌 10주년 기념책자)

#1876년 맥주 식민시대.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다. 초등교육을 마친 사람이라면 강화도 조약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한 가지 위안거리는 있는 법. 강화도 조약으로 인해 최초의 맥주가 한반도에 들어온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삿포로 맥주다. 그 후 기린, 에비스 등의 일본 맥주들이 국내에 맥주공장을 설립한다.

#광복 그런데 맥주 독립은? 광복 후에 맥주회사는 미군정에 의해 관리가 된다. 맥주의 맛은 미군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렇게 한국의 맥주는 라거 스타일로 바뀌게 된다. 어차피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이, 광복 초기에는 미군이 마실 맥주여서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1952년 민간에게 돌아가다. 맥주회사가 드디어 민간에게 돌아갔다. 조선맥주(하이트진로)와 동양맥주(OB맥주)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사람은 여전히 막걸리나 소주를 마셨다. 1974년까지만 하더라도 막걸리가 전체 주류의 74.2%를 차지했다. 그다음으로 찾는 것은 소주. 그다음은 아마 보리차?

2세대 맥주(1975~1999) : 생맥의 시대, 모든 맥주가 500cc로 불리다

(우리는 오랫동안 맥주의 이름을 500cc라고만 불러왔다)

#1975년 송창식과 생맥주. 맥주가 청년들의 술로 인정을 받을 때다. 이 시기의 청년문화는 바로 청생통(청바지, 생맥주, 통기타)으로 불린다. 송창식의 고래사냥 가사처럼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청년들. 이럴수가! 엄마, 아빠도 YOLO족일 때가 있었잖아?

#1986년 최초의 호프집. 하지만 생맥주는 대중적인 술은 아니었다(전체 맥주시장의 7~8%정도). 생맥주 한 통을 판매하는데 너무 오래 걸려 김 빠진 맥주 취급을 받았었다. 이때 동양맥주의 이영길 씨는 독일에 방문해 ‘브로이’라는 생맥주집에서 해결책을 찾아 돌아온다. 그리고 11월 5일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최초의 호프집 ‘OB호프’를 만든다. 그 뒤로 너나 나나 호프집이라는 잘못된 용어를 쓴다(홉은 맥주의 부재료다).

#1998년 IMF와 호프집. 1998년 IMF의 외환위기를 통해 많은 직장인이 거리로 내앉았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가 되었다. 많은 실직자들은 호프집 사장님이 되었다. 골목골목에 호프집들이 생기고, 실직자의 동료직원들이 회식마다 호프집을 방문함으로써 ‘2차는 호프’라는 무언의 공식이 만들어진다.

#생맥주의 유산 ‘치맥’. 생맥주는 시원하고 탄산이 가득하지만 생맥주 자체의 맛만을 즐기기에는 부족하다. 때문에 많은 안주들이 테이블에 함께 자리했다. 그중에 인기는 단연 치킨이었다. 치킨의 완성은 한국 맥주였고, 한국 맥주의 완성은 치킨이라고 할까? 위대한 마리아주의 탄생을 기리자.

3세대 맥주(1983~2010) : 폭탄주 투하, 맥주는 말아 마셔야 제맛이지!

(출처 : JTBC 마녀를 부탁해, 클릭하시면 영상링크로 이동합니다)

#1983년 여의도 폭탄주. ‘한국에서 폭탄주를 뺀 여의도 이야기는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말이 있다. 맥주를 폭약으로 위스키를 뇌관으로 하는 폭탄주는 1970년대 미국의 노동자들이 즐겨마시던 술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에 선지 한국에서는 검찰, 군대, 정치인들이 몰래 즐겨마셨다. 폭탄주가 역사에 드러난 것은 1983년 박희태(당시 춘천지검장)가 지역 기관장들과 폭탄주 회식을 하고 검찰에 이 문화를 전파시켰다고 한다.

#1986년 폭탄주와 사건사고. 폭탄주를 마시는 이들은 말한다. 이처럼 짧은 시간, 공평하게 취할 수 있는 민주적인 술이 어디 있냐고. 어쨌거나 곱게 마시면 좋을 텐데 폭탄주는 매번 사건사고를 불러일으켰다. 1986년 3월 31일 군장성들과 국회 국방위원들의 폭탄주 파티가 대표적이다. 고급 요정에서 폭탄주를 마시고 난투극을 벌인 이 사건때문에 전두환, 노태우의 최측근들이 좌천되었고, 전국민이 폭탄주의 존재를 알게 된다.

#2005년 폭소클럽의 탄생. 폭탄주와 정치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1999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과 관련한 국회 청문회에서 ‘왜 폭탄주를 마시냐?’라는 질문에 진형구 당시 대검 공안부장은 “양주가 너무 독해서”라는 명답변(?)을 남기기도 했다. 계속되는 오명에 17대 국회의원 30명은 박진의원(한나라당)을 필두로 폭소클럽(폭탄주 소통 클럽)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 명씩 낙오하여 박진의원만 남게 되었다는 슬픈비화가 있다. 그리고 18대 국회의원에서 새로운 이름의 클럽이 탄생한다. 조폭클럽(조용히 폭탄주를 마시는 모임)이다.

#폭탄주의 유산 ‘소맥’. 윗물이 폭탄주면 아랫물도 폭탄주라고 할까? 계속되는 폭탄주 뉴스에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폭탄주를 만드는 시도가 있었다. 2000년 때마침 소주가 20도 이하로 순해지자 국민들은 발견했다. 맥주와 소주의 환상적인 조화를. 비싼 양주 대신 소주로! 우리의 소맥문화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4세대 맥주(2013~2017) : 수입맥주의 진격, 4캔에 만원이 가져온 혁신

#1981년 하이네켄 상륙. 1988년 서울올림픽은 정말 중요한 시기였나 보다. 해외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1981년 동양맥주는 하이네켄의 기술 및 상표권을 받아 하이네캔 맥주를 생산한다. 그 뒤로 1984년 맥주 수입이 자유화되어 각국의 수입맥주들이 한국의 문을 두드린다. 근데 비싸.

#2012년 이코노미스트.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의 한 기자는 “한국의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라는 도발적인 기사를 쓰게 된다. 많은 한국인들은 충격을 받는다. 맛이 없는 것은 알았지만, 북한보다 맛이 없다고? 이는 곧 국내 맥주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고, 수입맥주를 찾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2013년 4캔에 만원. 발맞추어 나온 것이 바로 마트와 편의점의 ‘수입맥주 4캔에 만원’ 행사다. 잠깐의 이벤트로 하려고 했던 이 행사는 반응이 너무 좋아 현재도 상시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2013년 당시 맥주 판매 비중의 26.4%였던 수입맥주는 지난해 하반기 68.4%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평생 라거만 알던 한국인은 IPA나 에일 등의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를 알게 되었다.

#수입맥주의 반격이 낳은 유산 ‘혼맥과 편맥’. 그전까지의 맥주가 취하기 위해 마셨다면, 최근에는 즐기기 위해 마시는 맥주로 변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고르는 재미에 맥주의 무대가 술집이 아닌 편의점과 내 방으로 바뀌었다. 또한 여럿이서 많이 마시는 함술러에서, 혼자 다양하게 즐기는 혼술러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5세대 맥주(2014~) : 수제맥주, 대동여맥주의 시대를 열까?

(문재인 대통령의 건배주로 선정된 세븐브로이의 강서맥주, 사진출처 : 청와대 기자단)

#2014년 주세법 개정. 소규모 양조장에서 직접 만드는 수제맥주(Craft Beer)는 미국 전체 맥주시장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해외에서는 대중적인 문화다. 하지만 ‘하이트냐 카스냐’의 이분법이 지배하던 한국 맥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2014년 주세법이 개정되며 중소 양조장을 옭아매었던 규제가 풀리게 된다.

#2016년 마트에 수제맥주 입점. 주세법 개정으로 많은 수제맥주가 생기게 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을 하나 꼽자면 ‘세븐브로이’다. 그동안 맥주를 만들어 온 중소기업 맥주였지만,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이태원에 펍을 내고 입소문을 타며 수제맥주들의 갈 길을 제시했다. 그리고 2016년 대형 마트와 편의점에서 대기업의 맥주들과 나란히 어깨를 견주게 된다.

#2017년 청와대 맥주. 수입맥주 시장이 연평균 30%의 성장률이 보이고 있다면, 국내 수제맥주는 연 성장률 100%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호프미팅’의 건배주로 세븐브로이의 ‘강서맥주’가 선정된다. 강서맥주는 강서지역의 특징으로 만든 지역수제맥주로 현재 전국의 소규모 양조장에는 그 지역의 이름을 넣은 수제맥주들이 생산되고 있다.

#수제맥주는 새로운 문화를 이룰 수 있을까? 맥주를 만드는 재료는 간단하다. 하지만 새로운 맥주를 만들고 정착시키는 일은 어느 하나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농업기술과 양조기술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음주문화라는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100년 남짓한 우리의 맥주는 가야 할 길이 멀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은 관심을 갖고 맥주를 한 잔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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