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서 헤엄치는 작가들 작가와 술,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위대한 작가들은 왜 하나같이 주정뱅이일까?”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은 6명 중에 4명이 알콜중독자다. 심지어 알콜중독으로 사망하는 직업으로 바텐더에 이어 작가가 2위를 차지했다는 연구결과도 있었으니. ‘작가란 마시는 게 본업이고, 글을 쓰는 게 부업인가’라는 합리적 추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2명의 위대한 작가들의 술자리를 염탐해보기로 한다.

1925년 파리. 들랑브르가에 위치한 딩고 아메리칸 바(Dingo American Bar)에 주인공이 나타난다. 금발머리를 말끔하게 뒤로 넘긴 남자. 그의 이름은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zgerald)로 방금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의 탈고를 마치고 한 잔 하러 왔다.

그는 자신보다 5살 어린 무명작가를 출판사 편집자에게 소개한다. 이 친구의 데뷔작 출간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이름이 무언데? 이 무명작가의 이름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다. 영미문학의 전설로 손꼽히는 두 사람이 술친구란 사실도 신기하지만, 그들이 술을 대하는 방식은 더욱 흥미롭다.

재즈의 시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에게 술은 뮤즈였다. 실제로 “술을 마시면 감정이 고양되고, 나는 그런 감정을 이야기로 만들어”라고 고백한 바가 있다. 그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작가였다. 그런 믿음 때문인지 글솜씨가 떨어진 이후에는 더욱 독한 술에 의존하기도.

헤밍웨이에게 술은 기쁨이었다. 하지만 헤밍웨이에게 술은 작업에 영감을 주기보다는 지친 일상을 달래주는 충전제였다. 하루 종일 머리를 쓰고 열심히 일을 하고 난 뒤에, 내일 또 일을 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스트레스나 압박이 크다고. 그때 기분을 환기시켜주는 존재가 바로 술이었다. 작품을 쓸 때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피츠제럴드의 술에 대한 애정은 작품에서도 잘 나타난다. 위대한 개츠비 속에는 미국 금주법 시대의 풍자와 화려한 음주문화를 표현한 부분들이 많다. 그는 작업을 할 때는 진(JIN)을 달고 살았다. 물론 와인, 위스키 등을 차별 없이 사랑했다. 단 하나 맥주는 빼고. 그는 맥주는 술로 치지 않았다.

헤밍웨이의 술은 더욱 독한 럼(RUM)이었다. 미국 영화를 보면 터프가이들이 많이 마셨던 그 양주. 낚시나 복싱, 사격 등 헤밍웨이의 마초적 간지와 너무 어울리는 술이다. 반면 강한 돈수의 럼과 다르게 모히또도 즐겨 마셨다. 연하고 상큼한 모히또에서 헤밍웨이의 숨겨진 여성성이 나타난다는 흥미로운 분석도 있다.

안타깝게도 피츠제럴드의 주량은 형편없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의 주사가 엄청났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주사로는 ‘벌거벗기’가 있었다. 그는 1920년 연극 관객 앞에서 속옷 빼고 모든 옷을 벗은 적이 있다. 나훈아처럼 식당에 올라가 바지춤을 벗으려 한 적도 있었다. 결국 나훈아는 하지 않았지만, 피츠제럴드는 했다. 술을 안 마셨을 때는 그렇게 명량했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파티를 명량대첩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반면 헤밍웨이의 알콜내성은 전설적이었다. 그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주당들 사이에서는 자랑이겠지만, 우리의 피츠제럴드를 만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딩고 아메리칸 바에서 사건은 터지고 만다. 피츠제럴드는 술에 취해 사람들을 향해 고래고래 헤밍웨이의 글에 대한 일장연설을 한다(무안하고 화가 난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의 외모를 공격한다). 그런데 갑자기 피츠제럴드가 쓰러졌다. 헤밍웨이의 표현을 빌리면 ‘얼굴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더니 양초색으로 변하고 말았다’. 파티는 갑작스레 종료가 되었지만,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의 사이는 이때부터 쭈욱 갈라지게 된다.

피츠제럴드의 알콜중독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내는 정신병원에 들어갔고, 딸은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어 들어갈 돈이 많았다. 모아둔 돈은 이미 탕진했고, 술술 쓰던 글솜씨는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술이 필요했다. 그는 잠옷 위에 스웨터를 껴입고 작업을 했다. 땀을 흘리면 알콜이 빠져나갈까 싶어서. 문제는 땀을 배는 와중에도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피츠제럴드는 병원서 진료를 받고 금주기간을 갖기로 한다. 그는 친구들에게 선포한다. “제가 지금 금주 중이에요. 독한 술은 입에 안 대고 맥주만 마십니다.” 그에게 맥주는 술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금주기간 동안 매일 맥주를 스무 병쯤 들이켰다.

천하의 헤밍웨이도 세월 앞에 장사가 아니었다. 그토록 튼튼하던 간에 염증이 생겼고, 의사는 금주를 요구했다. 그 역시 자신의 금주사실을 칼럼으로 선언한다. 우리 아빠도 그렇지만 술 마시던 사람이 술을 끊는다는 것은 선언을 요구한다. 그는 술에 대한 갈증을 글로 푼다. 편지와 작품, 칼럼 등을 통해 나약한 피츠제럴드에 대한 살벌한 공격 글들은 헤밍웨이의 금주시기에 많이 나왔다. 같은 알콜중독이라도 너와 나는 급이 다르다는 듯이.

술로 가까워졌던 두 사람은, 술로 멀어졌다. 허무하게도 알콜로 고생하던 피츠제럴드는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피츠제럴드를 애도하는 흐름이 생겨났고 ‘위대한 개츠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 그의 작품은 재조명받는다. 10년이 지난 뒤에야 헤밍웨이는 애증의 친구에 대해 생각의 말을 적는다. “술은 스콧에게는 음식이 아닌 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자신도 포함되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알콜중독과 우울증으로 헤밍웨이 역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피츠제럴드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처음에는 네가 술을 마시고,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신다.”

» 술독에서 헤엄친 작가들

두 작가의 술에 대한 이야기를 문학청년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작가와 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술을 발효하여 전혀 새로운 마실거리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주는 놀라움이, 작가들이 작품을 구상하고 쓰는 것과 비슷하기에 작가들이 술에 끌리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겠냐고.”

음주에 대한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을 보니 이건 피츠제럴드 파인데? 마시고, 찬양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작가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물론 적당히 마시고 즐겁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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