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의 맥주를 아시나요🎃 #벨러스트 포인트 펌킨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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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좀비 분장을 했다가, 좀비가 될 뻔했다. 아직 할로윈이란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시기. 먼 나라 한국에 온 우리 원어민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할로윈 문화를 전파하려 했다. 1학년 때부터 영포라인을 탔던 우리는 그와 학문적 교류를 하지 않았지만, 종종 두루마리 휴지를 빌리며 항문적 교류를 나눴던 터였다.

그날도 친구들과 휴지를 빌리러 그의 연구실에 들렀다. 아무도 없네. 우리는 두루마리 휴지를 찾아 책상을 둘러보았다. 책상 밑에는 이상한 가면들이 떨어져 있었다. 무슨 애들도 아니고. 킬킬대는 순간 벽에서 좀비가 튀어나왔다. 놀란 친구는 그놈의 명치에 주먹을 꽂았다. 우리의 첫 할로윈이었다.

이제는 좀비나 유령보다 고지서가 더 무섭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10월 말이 되면 따뜻한 기억이 명치끝부터 올라온다. ‘할로윈이 다가오는구나.’ 나는 마스크 대신 맥주를 사는 것으로 할로윈 대비를 마무리한다. 오늘 소개할 할로윈 맥주 ‘펌킨에일’이다.

할로윈의 주인공, 펌킨에일

아아, 먼저 머나먼 타국에서 할로윈에 카스를 마셨을 그를 위한 애도를 보낸다. 할로윈처럼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음식이 빠질 수 없는데. 할로윈을 좋아하는 미국의 성인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 큰 어른들이 아이들처럼 사탕만 빨 수는 없잖아. 어디 굴러들어 오는 호박도 많은데 파이만 만들게 아니라 맥주로 즐기는 건 어떨까?”

그렇게 ‘펌킨에일(Pumpkin Ale)’이 태어났다. 맥주를 양조할 때 호박이 첨가된 펌킨에일은 이 시기에만 마실 수 있는 특별한 맥주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몇몇 수제맥주 집이나 바틀샵 등을 통해 펌킨 에일을 구할 수 있다고 하여 오늘은 편의점 대신 바틀샵으로 원정을 떠났다.

내가 고른 것은 벨러스트 포인트(Ballast Point)의 ‘펌킨 다운(Pumpkin Down)’. 라벨에 붙어있는 넘어진 해골병사가 애처로워 구매했다. 알고 보니 한 병에 8,000원. 3병이나 구매한 나는 집에는 걸어가야 한다. 저 넘어진 해골이 내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특별한 날에 마시는 맥주 소비는 언제나 무죄다.

호박파이의 풍미가 흐르는 맥주

펌킨다운의 뚜껑을 따서 컵에 따랐다. 처음에는 호박의 구수한 향이 풍겨 나온다. 그리고는 어디에서 시나몬을 찹찹 뿌린 향기가 피어오른다. 그게 합쳐져서 옛날 시골빵집에 가면 맡을 수 있는 빵 냄새 비슷한 분위기가 풍긴다. 그때는 싫어했는데 지금은 그리운 그 향이다.

색깔도 기대 이상이다. 호박이니까 완전히 주황색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 다르게 붉은 갈색의 맥주가 나왔다. 심지어 거품도 하얀색이 아니라 누렇다. 아아 미국의 호박 농가는 이런 느낌일까. 금세 한 모금을 넘겨보았다.

달달하다. 사실 호박이 맥주가 되었다기보다 호박파이를 마신다고 생각하는 게 더 좋다고 할 정도의 느낌이다. 쓰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 달달하게 넘어간 입 안에는 시나몬 향기가 오래 남는 편이다. 두고두고 마실지는 모르겠으나,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가 되면 생각날 법하다.

추억이 쌓일수록 펌킨에일은 깊어가고

아마 그랬을 것이다. 원어민 선생님은 네모난 교실에서 무표정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잠깐의 즐거움을 주려했을 것이다. 혼자 마스크를 쓰고 숨어서 설레어했을 그가 떠오른다. 비록 명치로 끝났지만 그의 숭고한 희생은 성공했고 한국은 이제 할로윈을 즐길 줄 아는 나라가 되었다. 보고 있나요 선생님?

이번 할로윈은 그 명치사냥꾼을 만나러 간다. 어차피 분장 따위는 하지 않아도 우리의 모습은 할로윈이기에 필요한 것은 맥주밖에 없다. 할로윈 추억을 안주삼아 마실 맥주의 맛은 더욱 훌륭할 것 같다. 할로윈에 대한 추억이 쌓이고 쌓일수록 펌킨에일의 맛은 깊어만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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