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007은 차 스파이였다 #로버트 포천, 중국의 차를 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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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공동묘지에는 시체 한 구가 더 묻힐 예정이었다. 중국인들은 두 손에 돌과 벽돌을 쥐고 한 남자를 쫓는다. 남자는 출구를 향해 달렸지만 날아온 벽돌에 등을 맞고 쓰러졌다. 장정들은 그의 팔과 다리를 잡고 소년들은 남자의 주머니를 뒤진다. 발버둥 치는 남자에게는 주먹과 발길질이 쏟아졌다. 젠장, 임무는 이렇게 끝나는 건가.


양귀비와 동백
그리고 전쟁

1840년, 영국과 중국은 두 꽃을 두고 전례 없는 전쟁을 벌였다. 양귀비와 동백이다. 양귀비는 아편이 되어 중국에 흘러갔고, 동백으로 만든 차는 영국을 상징하는 음료가 되었다. 하지만 중국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아편을 막고자 했고, 영국은 아편을 팔아야만 차를 살 수 있었다. 아편전쟁은 그렇게 발발했다.

결국 영국이 승리했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은 더 이상 안정적인 차 공급지가 아니게 되었다. 차를 만드는 기술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인들만 공유하는 지식이었다. 이를 어찌할까? 영국은 중국에서 차를 훔쳐올 사람을 찾는다.


농부의 아들
영국 최초의 스파이 되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포천(Robert Fortune). 옥스퍼드 대학도 에든버러 대학 출신도 아니어서 식물학 전문가 그룹에 낄 수 없었던 원예사였다. 포천은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신분상승의 야망이 있었다. 그는 중국 여행을 떠나 식물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진달래, 국화, 금귤 나무 등을 소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임무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차가 생산되는 중국 내륙은 외지인이 출입할 수 없었다. 당시 세계지도에 중국 내륙은 ‘용이 있는 곳(here be dragons)’으로 표기가 되었다. 온갖 환상과 위험이 가득한 곳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포천은 중국 내륙이야 말로 신비한 초목이 가득할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흥분과 기대를 가득 품은 그는 외지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내륙으로 첫 발걸음을 딛는다.


양귀신, 양귀신!
분노한 군중을 피하라

다시 돌아온 공동묘지. 포천은 죽을 만큼 얻어맞았지만 묻히지는 않았다. 아편전쟁 패배로 인해 강제 개항을 하게 된 중국은 외지인에게 적대감이 심했다. 외지인은 항구 지역을 넘는 것이 금지되었고, 중국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엄벌에 처해졌다. 그런데 포천은 중국 내륙의 농가에 들어왔다. 살아있는 게 다행 아닌가.

포천은 안전을 위해 위장을 했다. 정체를 가리기 위해 가마를 탔고 중국 옷을 입었다. 황비홍처럼 머리의 앞을 밀었던 것은 여행 최대의 고통이었다. 하필이면 초보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겼기 때문. 그는 비누칠도 안 하고 포천의 머리를 뜯듯 밀었다. 포천의 말을 빌리면 ‘뺨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며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중국 내륙에 용이 있지는 않았지만 신비함과 위험이 가득한 것은 맞았다. 멧돼지의 덫에 걸리기도 했고, 산과 강에는 도적을 만나기를 반복했다. 목숨의 고비를 넘을 때마다 그는 중국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새로운 식물에 대한 열망이 내륙으로, 더욱 내륙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차나무의 정체를 본
최초의 유럽인이 되다

포천은 차 재배지를 찾는다. 오랫동안 숨겨진 미지의 공간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당시 유럽인들은 살아있는 차나무를 제대로 본 사람이 드물었고, 심지어 녹차와 홍차가 같은 나무에서 자란 잎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는 차의 제조과정 또한 살폈다. 단순히 마른 잎을 끓는 물에 우리는 것으로는 중국차를 구현할 수 없었다. 당시 영국은 서양 과학으로 차를 분석하면 그 비밀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포천은 오랜 시간 전통적으로 만들어진 섬세한 행위는 당시의 과학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천은 인부들의 손이 파랗게 물든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바로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블루 티(Blue Tea)’의 정체였는데. 프러시안 블루라는 청색 안료를 섞어 녹차에 색을 입히는 것이었다. 이는 중국차가 사실상 영국인들에게 독을 먹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포천은 차나무 종자와 제조과정의 비밀을 적은 일기를 가지고 중국을 빠져나가게 된다.


실패로 돌아간
첫 여행

태풍을 만났다. 선실이 물에 잠겨 많은 묘목이 다쳤다. 고된 여행 때문에 포천은 열병이 났는데, 때마침 해적선의 공격을 받았다. 선원들은 모두 갑판 아래로 도망쳤다.

포천은 자신의 영국 옷을 선원들에게 입혔다. 그리고 홀로 산탄총과 권총을 들고 나와 해적선의 키잡이를 쏘아 쓰러트렸다. 해적들은 작은 배안에 영국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안갯속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포천은 다시 침대로 돌아가 쓰러졌다. 묘목의 생존율은 3%도 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중국으로, 더 내륙으로

그는 몸이 회복되자 다시 중국으로 떠난다. 목숨을 유지하기에 바빴던 첫 번째 여행과는 달랐다. 포천은 길이 밝은 하인 싱후와 함께 중국 더욱 깊은 내륙으로 들어갔다. 바로 중국 최고의 차 생산지 ‘우이산맥’이었다. 올라갈수록 구름과 가까워지고 대나무가 빽빽한 경치에 포천은 압도당했다. 그는 마치 산들의 바닷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힌다.

우이산맥에는 차 밭이 가득했다. 그는 한 농부에게 하루 묵을 절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농부는 이곳에는 절이 천 개쯤은 있다고 했다. 포천이 당도한 절은 중국에 대한 그의 적개심을 풀어주는데 일조했다. 포천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승려들 역시 그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저 매일 아침 포천과 승려들은 함께 차 밭에서 일을 하고 그 과정을 기록할 뿐이었다. 포천은 그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하인 싱후는 문제가 있었다. 중국 깊숙한 내륙까지 외지인을 데려왔다는 그의 자신감은 이상하게 발현되었다. 그는 포천이 사실은 칭기즈칸의 후예인 고귀한 사람이라고 소문을 냈다. 한 늙은 승려가 그 소문을 듣고 포천에게 절을 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왜곡한 사실에 자책한다. 떠날 때가 된 것이다.

포천이 우이산을 떠난다. 그의 접대를 맡은 승려는 포천에게 이별 선물을 줬다. 초목과 꽃들이었다. 포천의 일기에는 그것이 어떤 품종인지 정확히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승려는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았다고 말했다.


차 역사를 바꿀
범선이 출항한다

1851년 봄, 안개가 자욱한 홍콩 항에서 4척의 범선이 떠난다. 그곳에는 3년 동안 우이산맥을 비롯한 중국 차 재배지를 다닌 포천의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2천 개의 차나무 묘목, 1만 7천 개의 발아한 종자, 숙련된 차 일꾼 한 팀이었다. 중국이 감춰왔던 비밀이 바다를 건너간다.

포천이 훔친 차나무와 재배방법은 인도 히말라야 부근의 차나무를 개량시킨다. 우리가 부르는 아쌈, 다즐링 등의 차다. 20년도 지나지 않아 세계는 영국이 만든 차를 구매했고, 한 세기가 되기도 전에 인도산 차가 중국 차 생산량을 앞지른다. 차가 곧 엄청난 경제 상품이었던 시대. 포천이 뿌린 씨로 세계는 다시 한번 요동친다.

근대 영국 최초의 산업스파이인 ‘로버트 포천’은 이후에도 중국에 남는다. 그동안 식물도감에 공백으로 남아있던 동양 식물을 수백 종 발견하는 성과를 이룬다. 하지만 무엇보다 본국에서 인기 있던 것은 그의 중국 여행을 담은 일기였다. 그의 여행담은 때로는 007처럼, 때로는 인디아나 존스처럼 사람들에게 읽혔고 결과적으로 차에 대한 유럽인의 사랑을 키웠다. 이야기, 이야기는 언제나 음료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니까.

  • 사진출처 : ©Compagnie des Taxi Brousse (영화 Tea War)
  • 참고문헌 : 초목전쟁, 세라로즈
  • 차의 세계사, 베아트리스 호헤네거
  • 커피 설탕 차의 세계사, 이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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