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 먹는 애주가 #치맥의 끝에서 샐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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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건 혹시… 불치병인가요?”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나는 단박에 알아버렸다. 저 사슴 같은 슬픈 눈망울은 아침드라마에서 주인공에게 불치병을 선고할 때의 그 표정이다. 어쩐지 요즘 들어 발걸음이 무겁고, 숨이 가쁘더니. 운동이라도 할 걸 그랬어… 착하게 좀 살 걸 그랬어… 한동안 답이 없던 의사 선생님은 힘겹게 입을 뗐다.

“치킨 좋아하시죠? 조금만 더 먹었다간 환자분을 치킨이라고 불러야 되겠어요.”

다행이다. 나는 죽지는 않고 치킨이 되는 것이다(치킨을 먹으며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당신도 조심해! 곧 당신도 치킨으로 변할 테니까).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치킨금지령’을 처방했다.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 정도야 가뿐히 지킬 수 있다. 그런데… 맥주는 뭐랑 먹어야 하지?


치킨 없이는 살 수 있어
하지만 치맥 없이는 못 살아

최고의 맥주 안주를 잃고 돌아오는 길이 힘겹다. 날씨가 좋으면 뭐하나. 주말에 나들이를 가기로 했어도 뭐하나. 치맥이 없다면 모두 부질없는 것이다. 나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기 위해 쑥과 마늘, 냉장고에 있는 채소들을 먹어왔다. 어린이 고전 세계명작을 갈아 넣었나 지루하고 졸린 맛이 났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싶을 때, 어느 영화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노트북 스티커에 붙어있는 한 줄의 카피, ‘샐러드 먹는 애주가’를 본 것이다. 한 줄의 추파를 던진 것은 식사 샐러드를 배송하는 프레시코드. 이곳은 음주용 샐러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샐러드를 배송했다. 일단 맛의 종류가 다양했고, 용량도 넉넉했다. 신선한 재료도 만족스러운 부분. 하지만 무엇보다 맥주가 고팠다.


샐러드와 맥주를
매칭할 수 있겠어?

혹자는 말한다. “치맥이 아닌 맥주 안주는 용납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런 닭장에 갇힌 생각으로는 맥주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없다. 오히려 샐러드는 재료 각각의 맛과 향이 살아있어서 다양한 맛의 맥주와 궁합을 맞춰볼 수 있다. 이런 맥주 페어링(pairing)에는 두 가지 전략이 있다.

  1. 음식과 맥주의 맛과 향은 비슷한 강도로
  2. 음식에서 부족한 부분을 맥주가 채우도록

나는 당장 프레시코드의 샐러드 새벽배송을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지름신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이는 샐러드와 맥주라는 위대한 만남의 시작인 것이다. 치맥의 세계에서 샐맥의 시대로. 마시즘이 떠난다.


닭가슴살 아몬드 샐러드
필스너 우르켈

첫날이다. 내가 잠든 사이에 ‘닭가슴살 아몬드 샐러드’가 집 앞에 놓여있었다. 이런 산타클로스 같으니라고. 오랜만에 보는 닭과의 마주침에 설레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거기에 아몬드와 쌀국수 튀김, 각종 과일까지 구성이 화려하다. 내가 그동안 먹었던 샐러드는 그냥 저 푸른 초원 같은 거였는데.

이 정도 샐러드에 어울리는 맥주는 바로 ‘필스너 우르켈’이다. 평소 가장 많이 마시는 맥주이기도 하고, 툭 튀지 않고 균형이 잡혀있어 어느 안주와도 어울린다. 맛의 중립국이라고 할까? 닭가슴살의 고소함과 필스너 우르켈의 쌉싸름함이 밀물과 썰물처럼 박자를 맞추었다.

닭가슴살 아몬드 샐러드, 필스너 우르켈 모두 각 분야에서는 스테디셀러이기에 실패가 없는 조합이다. 만약 필스너 우르켈의 씁쓸한 홉맛이 부담스럽다면 더욱 라이트 한 라거 맥주로 바꿔도 좋다. 그게 무어냐고? 카스, 하이트, 클라우드 등등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맥주다.


훈제 두부 아몬드 샐러드
파울라너 헤페바이젠

우리의 샐맥은 닭가슴살에서 멈출 수 없다. 오늘의 녀석은 ‘훈제 두부 아몬드 샐러드’다. 시작부터 놀랐다. 처음에는 두부 샐러드라고 해서 얕잡아봤는데 내가 알던 두부가 아니었다. 식감이 쫀득하고 흡사 고기의 맛이 느껴졌다. 말로만 들었던 비건푸드란게 이런 거였나. 다이어터라면 무리한 고기단식보다 이 녀석을 먹는 것이 훨씬 욕망을 잠재우고, 건강을 되찾아줄 듯하다.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나는 훈제 두부 아몬드 샐러드에는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밀맥주가 어울린다. 냉장고에 있는 ‘파울라너 헤페바이젠(이름에 바이젠이 붙으면 독일식 밀맥주)’을 꺼냈다. 훈제 두부 아몬드 샐러드의 맛과 풍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목을 감아 넘어가는 밀맥주의 조합이 어울린다.

부드러운 밀맥주는 청량감 있는 라거맥주에 밀려 ‘치맥 엔트리’에서 탈락하던 맛있지만 불쌍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밀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을 찾았다. 궁합으로 따지자면 평생 안 다투고 백년만년 잘 살 것 같은 녀석들이다. 나도 이 둘의 조합을 오래 만나고 싶다.


준비운동은 끝났다
맥주는 실전이야

이틀간의 연습으로 샐러드와 맥주의 조합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약속했던 주말의 피크닉. 그렇다. ‘치맥의 날’에 도달하고 말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도시락 담당이다. 자연스럽게 인터넷에 접속해서 치킨… 대신에 프레시 코드의 남은 4개 종류의 샐러드를 모두 시켰다. 좋은 건 함께 나누는 거니까… 는 아니고 감히 다른 이가 치킨을 입에 담는 꼴은 볼 수 없지.


핫픽 샐러드 (a.k.a. 청양고추 돼지안심 샐러드)
사무엘 아담스 레벨 IPA

“피크닉에 샐러드와 맥주라니!”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그를 위해 준비했다. 프레시코드의 ‘핫픽 샐러드’다. 함께 배송된 ‘청양고추 드레싱’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운맛과 달콤함을 지닌 개성 강한 샐러드다. 감히 샐맥을 무시한 이에게 샐러드의 매운맛을 보여줘야지.

도발적인 음식에는 도발적인 맥주로 맞불을 놓는 것이 좋다. 핫픽 샐러드와 함께 맛의 아우토반을 달려줄 녀석으로 IPA맥주를 점찍어 왔다. IPA는 인디아 페일 에일의 줄임말이다. 영국에서 인도까지 맥주를 배송하기 위해 도수를 높이는데 모든 경험치를 쏟았다고. 요즘에는 맥타쿠의 맥주로 불린다.

IPA에도 다양한 맛이 있다. 잘못 골라서 마셨다가 혀에 철퇴를 맞는 느낌을 피하고 싶다면, 균형 잡힌 맛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내가 고른 맥주는 ‘사무엘 아담스 레벨 IPA’다. 화사하고 달콤한 향이 나고, 적당히 쓴맛이 나서 핫픽 샐러드의 매콤함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마카로니 콥 샐러드
스텔라 아르투아

치킨과 함께 금지당한 것. 그것은 바로 피자다. ‘마카로니 콥 샐러드’를 보는 순간 잊었던 피자에 대한 생각이 나서 침샘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짭조름한 베이컨에 블랙 올리브, 치킨 큐브에 마카로니까지… 내가 먹고 싶어 하던 것은 이곳에 다 들어있는 듯하다. 양도 많아서 이쯤 되면 한 끼 식사로 너끈해 보인다.

익숙한 음식에는 익숙한 맥주가 좋다. 하지만 피크닉이라면? 외관이 예쁜 맥주를 가져가는 것도 하나의 기분을 낼 수 있다. ‘스텔라 아르투아’는 우리에게 익숙한 청량감 있는 맥주다. 살짝 시큼한 맛도 있어서 고소하고, 짭조름한 마카로니 콥 샐러드의 맛에 윤기를 나게 한다.

무엇보다 다른 맥주들처럼 중후하게 생기지 않아서, 날씨와 분위기에 어울려 카메라를 부르고야 만다. #샐러드 #스텔라아르투아 #피크닉 #성공적 … 역시 인증하기 좋아야 맛도 좋은 법이다.


리코타 하베스트 샐러드
대강 페일에일

처음에는 아이스크림인 줄 알았다. 하얀색 리코타 치즈가 큼지막히 올라간 ‘리코타 하베스트 샐러드’는 색색깔로 예쁘게 차려진 재료의 데코레이션이 돋보였다. 아직 한입도 먹지 않았는데 아삭한 느낌. 이런 상큼하고 신선한 이미지에는 과일향 가득한 페일에일이 제격이다.

내가 고른 것은 ‘대강 페일에일’이다. 비싼 만큼 맛있는 녀석이고, 심지어 한국 맥주라 애국심도 올라가는 그런 맥주다. 대강 페일에일의 과일포스에 우유 빛깔 리코타 치즈의 담백함이 만나니 군침이 난다. 한 입에 아삭하게 씹을 수 있는 크기로 잘린 사과, 입안에서 트로피카나처럼 터지는 귀리까지도 대강 페일에일과 화음을 맞춰주었다. 과연 삼신할머니 급의 매칭 솜씨가 아닌가.


아쉬파 샐러드(a.k.a. 아보카도 쉬림프 파인애플 샐러드)
코젤 다크

마지막 피니시 샐러드는 ‘아쉬파 샐러드’다. 약간 귀가 간지러운 이름이다. 알고 보니 아보카도, 쉬림프, 파인애플의 앞 글자를 딴 거였다. 그래서 아쉬파구나. 아쉬파. 괜히 잊히지 않는 이름이다.

이름만큼이나 맛도 강렬하다. 해물과 과일이 들어갔는데, 할라피뇨도 들어갔다. 이 녀석은 주사위 같은 맛을 냈다. 어디에 포크를 집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까. 내가 준비한 맥주는 ‘코젤 다크’다. 흑갈색의 둔켈 맥주지만 도수가 높지 않고 부드럽다. 코젤 다크는 ‘Lady’s beer’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커피를 마시는 느낌이 들어 여성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러운 녀석.

부드럽지만 느끼할 법한 아보카도의 맛에 양파, 할라피뇨, 올리브 등이 들어간 멕시칸식 찹 샐러드 곁들여졌다. 추가로 짭조름한 쉬림프까지. 재료들이 서로의 맛을 뽐내기 전에 코젤 다크는 혀를 진정시켜 준다. ‘차례대로 나와서 각자의 말을 뽐내라’는 맛의 진행자. 맛의 마에스트로 같은 맥주다. 아쉬파 샐러드와 코젤 다크의 런웨이가 끝나면 입 안에 행복한 향이 감돌아 더욱 만족. 대만족이다.


치맥을 벗어나면
드넓은 맥주의 세계가 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치맥’이라는 울타리에 갇혀있었다. 치맥의 세계에서 언제나 주연이었던 치킨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그에 따라가는 맥주는 언제나 카스 아니면 하이트였다. 다른 맛과 향을 가진 맥주들은 치킨과 어울리지 않았던 것도 항상 아쉬울 참이었다.

맥주들의 맛도 살리고, 건강까지 챙겨주는 ‘샐맥’의 땅은 뜻밖의 수확이다. 맥주만큼이나 샐러드의 세계도 다양해서 당분간은 이 콤보, 저 콤보를 만들어 보며 즐거운 맥주 생활을 보낼 듯하다. 세상은 넓고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은 많다. 그렇기에 우리의 맥주 모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 후기

샐맥에 대한 리뷰가 나간 후, 본진 … 아니 이 산타클로스 같은 샐러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독자들을 위해 삼천원 할인쿠폰 샐맥코드를 주겠다고(나…나는!!), 대신 할인 받은 돈으로 맥주를 꼭 마시라고 한다.

방법은 이러하다. 프레시코드(www.freshcode.me)에 회원가입을 할 때 프로모션 코드에 “salmac”을 넣으면 끝! 이렇게 맥주 마실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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