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소주의 독한 전쟁사, 참이슬 VS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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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소주를 마시는 이유는 세 가지다.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둘 다 아니거나.”

그렇다. 한국사람은 기승전소주의 삶을 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술(증류주)에 2001년부터 16년 연속 1위를 하는 술이 바로 참이슬이다. 2위는 러시아의 스미노프. 그리고 3위는 처음처럼이다. 1위와 3위가 소주라니. 대체 이 작은 나라에서 얼마나 마시는 거냐?

의문인 점은 애주가들의 소주부심이다. “크으 이건 진정한 소주가 아니야” 분명 10년 전에 아빠도 했던 말 같은데. 아마도 할아버지도 소주잔을 꺾으며 같은 말을 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진정한 소주란 무엇일까?

그래서 준비했다. 오늘의 음주는 소주고, 안주는 소주의 역사다.


소주는 원래 달았다?
단맛 VS 쓴맛

할아버지 시대까지는 ‘소주가 달았다’. 이것은 음주적인 표현이 아니다. 원래 소주는 쌀이나 고구마 등으로 발효를 시킨 후 끓여서 얻는 술이다(불사를 소燒에 술 주酒). 때문에 달콤한 맛과 향이 특징이다. 문제는 만들기가 까다롭다는 것. 잘못 만들면 불순물이 많아 숙취로 하루가 지워질 수도 있었다.

1924년 평안도에 자리 잡은 ‘진천 양조상회’도 달콤한 소주를 만들었다. 원숭이 로고가 박혀있던 이곳은 1954년 서울로 본사를 옮기며 ‘두꺼비’로 로고를 바꿨다. 그렇다. 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름의 회사가 오늘날 ‘진로(하이트진로)’가 된다.

(축하합니다! 원숭이가 두꺼비로 진화했습니다! 대체 왜?)

동물만 바꾼 것이 아니다. 1965년 진로는 소주 생산방식을 바꿨다. ‘희석식 소주’를 선보인 것이다. 이는 마른오징어에서 물 짜듯이 값싼 재료에서 기계 증류탑을 이용해 알콜을 97~98%까지 뽑는 방식이다. 이 강한 알콜(주정)을 물에 타면서 희석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희석식 소주는 기존 소주에 비해 원가가 싸고 만들기가 쉬웠다. 문제는 알콜냄새와 쓴맛이 강했다. 할아버지는 말했을 거다. “이건 소주가 아니야!”

당시 소주의 끝판왕은 전라남도 목포에서 만드는 ‘삼학소주’였다. 단맛이 특징인 삼학소주의 시장점유율 60%은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다. 쓴맛 나는 소주를 만들었다가 인생의 쓴맛을 볼 수 있었던 진로는 어떻게 삼학을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정책적인 타이밍이 맞았다. 1965년 박정희 정부는 ‘양곡관리법(쌀 수요 억제)’을 발표하며 쌀막걸리를 비롯 기존 소주 증류를 금지시킨다. 소주의 표준이 쌀을 안 써도 되는 희석식 소주가 된 것이다. 아무리 소주계의 강자 삼학소주라도 정책에 엇박자를 맞추면 밀주에 불과했다.

그렇게 1970년 12월 진로는 소주시장 1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한 번도 이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소주병은 어쩌다 초록색이 되었을까?
투명병 VS 초록병

이젠 아버지의 시대로! 애주가들에게 소주는 두꺼비와 동의어가 되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소주병은 투명하거나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보통 맥주는 빛 때문에 상하는 것을 방지하려 갈색병을 쓴다. 하지만 알콜도수가 20도가 넘어 유통기한이 없는 소주는 아무 병에 넣어도 괜찮았다. 뜬금없이 초록병에 담긴 소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걸 아신다고요? 삐삑 아재입니다)

그 주인공은 1994년 두산경월(이하 두산)에서 나온 ‘그린’소주다. 여러 소주들 사이에서 튀어보는 게 첫 번째 목적. 그리고 초록색 병으로 친환경 이미지까지 노리는 게 다음 목적이다. 색깔 하나 바꾼 게 뭐가 대수냐고? 효과는 놀라웠다. 새파랗게 젊은 그린은 한때 시장점유율 20%까지 차지하며 진로를 추격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다른 소주회사들도 하나 둘 초록병을 사용했다. 진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린의 추격에 깨달음을 얻은 진로는 1998년 대대적인 리뉴얼을 감행한다. 병을 초록색으로 바꾸는 것은 물론, 제조과정에서 대나무 숯을 사용해서 자연에 가까운 소주를 만든다.

그 전설 아니 레전드의 이름 바로 ‘참이슬’이 되겠다.


전설의 투톱소주 작명가가 같은 사람?
참이슬 VS 처음처럼

참이슬은 ‘진로(참 진眞, 이슬 로露)’의 한자어를 한글로 풀어쓴 이름이다. 하지만 애주가들은 참이슬을 굉장히 젊다고 느꼈다. 본격 회춘한 참이슬은 전국의 회식자리를 평정하며 왕좌를 이어받는다. 그사이 그린은 ‘뉴그린’으로 진화했지만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산’으로 출시되었다가 산으로 가고 만다.

그리고 2006년 두산은 마지막 카운터를 날린다. ‘처음처럼’이 출시된 것이다.

처음처럼은 제품 출시 2주를 앞두고도 이름을 정하지 못했다. 소주는 이름 빨(?)이다. 취한 상태에서도 스타카토로 주문하려면 이름이 찰져야 한다. 두산은 결국 이름 잘 짓기로 소문난 전문가를 찾는다. 그가 추천한 소주 이름은 처음처럼이었다. 술을 마신 다음날에도 처음처럼 개운할 것 같은 이름이다. 좋다!

(신영복 교수의 서화 작품집, 이 문구는 한 정당 당사에 걸린 적이 있어서 공짜소주 광고를 하기도)

문제는 처음처럼이라는 이름이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교수의 작품 제목이라는 것이었다. 두산은 신영복 교수를 찾아가 설득작업을 펼쳤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성공회대학교에 1억원의 장학금을 기탁하는 것으로 처음처럼을 허락받았다. 아니 이름을 하사 받았다고 해야 하나? 소주병에 적혀있는 처음처럼의 글씨는 바로 신영복 교수가 직접 써준 것이다.

작명은 성공적이었다. 처음처럼을 추천했던 용한 작명가… 그는 누구일까? 바로 전 크로스포인트 사장이자, 현 국회의원인 ‘손혜원’ 의원이다. 참고로 손혜원 의원은 ‘참이슬’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이 마시는 두 술의 이름을 모두 붙이다니. 명예 소주의 전당에 등극시키고 싶다.


누가 물 좋은 소주냐?
대나무 숯 필터 VS 알칼리 환원수

하지만 처음처럼의 무기는 이름이 아니었다. 바로 소주의 80%를 차지하는 물이다. 처음처럼은 ‘세계 최초 알칼리성 환원수’로 만들었음을 내세웠다. 이름찬란한(?) 물의 정체는 대관령의 청정수를 전기분해로 나눠 몸에 좋은 알칼리성만 취한다… 는 것인데 주당들에게 건강한 술로 여겨졌다. 물론 과음하면 몸 안 좋기는 똑같다.

소주는 재료가 단순한 술이다. 알콜, 즉 주정은 소주회사가 아닌 국가에서 지정한 업체가 만들어 제공한다. 때문에 소주마다 차별화를 할 수 있는 것은 1%도 안 되는 첨가물이었다. 처음처럼의 등장은 머리에 브릿지만 넣을 줄 알았던 복학생들 사이에서 삭발한 신입생이 나타난 격이다. 애주가들의 시선집중. 두산은 처음처럼을 출시하고 소주업계 6위에서 2위로 도약한다.

디펜딩 챔피언인 참이슬이 나설 때가 되었다. 참이슬은 대나무 숯을 이용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깨끗한 소주임을 강조해왔다. 처음처럼이라… 오랜만에 상대할만한 도전자가 나타났군.


대결이다 포켓몬…아니 소주 모델!
단아함 VS 섹시

과거에는 ‘참이슬의 모델을 맡아야 최고의 여성스타’라는 공식이 있었다. 깨끗함과 맑음을 내세우는 참이슬은 주로 단아한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했다. 어른들이 기억하는 이영애부터 지금의 아이유까지 역대 참이슬 모델은 대부분 이런 이미지였다. 2000년대 초에는 한복을 입고 나오는 단아함의 끝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영애와 아이유, 이효리와 수지, 참이슬과 처음처럼의 전현직 광고모델들)

도전자인 처음처럼은 도발적이다. 처음처럼이 두산에서 롯데로 주인이 바뀌면서 광고모델로 이효리를 내세운 것이다. 당시 이효리는 뭐든 저스트 텐 미닛인 대중문화의 치트키아닌가. 애주가들은 술병 라벨에 붙은 이효리 사진을 잔 밑에 붙여 ‘효리주’라는 것을 유행시켰다. 이후 처음처럼은 도시적인 이미지의 모델을 기용했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을 비롯해 대부분 소주 광고는 2030대 여성 연예인을 기용한다. 소주의 소비자가 2030대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다른 움직임이 벌어졌다. 바로 김건모다. 방송에서 줄곧 소주에 대한 애정을 펼쳤던 김건모는 결국 대선소주의 모델을 맡았다. 다양한 세대가 소주를 마시는 이때에 ‘진정한 애주가’를 모델로 내세우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가 아닐까(라고 쓰고 이력서를 들이밀어 봅니다. 저도 참 잘 마시는데요).


순한 소주의 독한 전쟁들
저도수 VS 저도수

물과 이름 그리고 모델로 처음처럼은 참이슬에 맞서는 이인자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각을 세우는 정도만 가능했을 뿐이다. 참이슬은 현재까지도 50%의 점유율을 가진 일인자다. 남은 승부수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소주의 도수를 바꾸는 것이다.

진로는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알콜도수 25도를 유지했다. 어른들이 진정한 소주를 25도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식문화는 가벼워졌다. 또한 늘어나는 여성 애주가들에게 25도 소주는 너무 독했다. 진로는 이런 변화에 맞춰 참이슬을 낸 것이다. 무려 23도의 저도수 소주. 잠깐 이게 왜 저도수지(;;)

여기에 처음처럼이 기름을 부었다. “20도짜리 부드러운 소주가 나왔습니다 여러분!”이라는 외침에 소주의 마지노선은 20도가 되었다. 이에 참이슬은 19.8도를 출시하며 마지노선을 파괴한다. 거기에 처음처럼이 19.5도로 응수하고… 지금은 참이슬과 처음처럼 모두 17도 초반이다. 도수가 약해진 만큼 소주를 많이 마시니 매출도 많이 좋아졌다고.

소주 도수는 어디까지 내려갈까? 전문가는 15도가 소주의 마지노선이라고 예측한다. 그 이하면 소주 특유의 알콜향이 사라지고 물의 느낌이 강해진다. 이를 숨기려면 여러 첨가물을 넣거나, 아예 과일소주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지역 소주들은 15도짜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기차는 멈출 줄 모른다. 우리는 조만간 소주 맛 생수(?)의 출현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기쁠 때나 힘들 때 소주 한 잔이 주는 힘

‘취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한 사치다. 시간도 투자해야 하고, 건강도 받쳐줘야 한다. 무엇보다 취할 만큼 술을 살 돈이 있어야 한다. 술은 원래 비싼 것이다. 하지만 소주는 부담 없는 가격으로 노동자의 저녁을 위로해줬다. “소주 한 잔 하고 털어내자” 이 말 덕분에 할아버지, 아버지를 비롯해 한국사회 전체가 힘을 낸 시기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술은 취하려고 마시기보다, 즐기고 싶어 마신다. 만약 소주회사가 하나뿐이었다면 바뀐 시대에 적응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참이슬과 처음처럼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소주의 맛과 품질을 바꾸고 있다. 그렇게 가장 한국적인 술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야 앞으로 마실 날이 많이 남았으니까, 더 맛있어지길 기대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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