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소환하는 추억의 음료수 5 어린이날 추억의 음료수 BES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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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시골살이의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원하는 과자와 음료수를 가까이에서 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행하는 것들을 오직 텔레비전 광고로만 만날 수 있었다. 나는 텔레비전 앞에서 입맛을 다시곤 했다. 저건 정말 맛있겠다.

딱 하루 그런 갈증이 해소되는 날이 있었다. 바로 어린이날이다. 엄마와 아빠는 올해도 어김없이 동물원에 날 데려갈 것이고, 나는 동물원에 있는 가게에서 원하는 음료수를 골라 마실 것이다. 설레는 마음때문에 어린이날이 되기 전 날 밤은 길고 길었다. 나는 내일 마시고 싶은 음료수를 중얼거리며 잠에 들곤 했다.

내일은 어린이날인데 어떤 음료수를 마시지?

깜찍이소다 : 태초에 깜찍이 소다가 있었다

거북이가 지나가며 물 웅덩이를 밟는 바람에 달팽이 한마리에게 물이 튄다. “아야! 방금 뭐가 지나갔냐?” 옆에 있는 달팽이는 말한다. “글쎄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이런 허무맹랑한 애니메이션에 배를 잡고 웃었다는게 돌아보면 자존심이 상한다. 캐릭터 음료계의 조상님 깜찍이소다 이야기다.

광고를 본 초딩들은 ‘깜찍이, 깜찍이, 깜찍이’ 노래를 따라부르며 엄마 아빠를 괴롭혔다(얼마나 끔찍했을까). 깜찍이 소다에서는 연한 밀키스 맛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245ml 작은 용량의 용기에 담긴 것이 특징이었다. 수류탄처럼 생겼기 때문에 깜찍이소다를 다 마시면 친구들과 병을 투척하고 놀았다.

헬로 팬돌이 : 남자는 블루, 여자는 핑크

헬로 팬돌이(이하 팬돌이)는 전국 초딩들의 소풍 필수템이었다. 팬돌이는 입구가 특이해서 쪽쪽 빨아먹어야 했다. 하지만 맛을 좀 아는 친구들은 팬돌이의 뚜껑에 음료를 따라서 홀짝홀짝 잔을 훔쳤다. 마치 어른들이 소주를 마시듯이. 느낌 알잖아.

팬돌이는 핑크맛과 블루맛이 있었다. 핑크맛은 솜사탕 맛이었는데, 블루맛은 규정할 수 없는 맛이라 그냥 블루맛이라고 불렀다. 당시에 암묵적으로 남자는 블루맛, 여자는 핑크맛을 사야했다. 솜사탕 맛이 느껴지는 핑크맛이 더 좋았는데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블루맛만을 먹는 내 성별이 한심스러웠었다.

쿠우 : 맛있는 건 정말 참을 수 없어

한 번 보면 빠져나올 수 없는 광고. 바로 쿠우다. 쿠우 광고를 보고 일본의 감성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노래도 게으르고, 캐릭터도 게으른 것이 완전히 내 취향이었다. 쿠우.

기대했던 쿠우의 맛을 봤다. 살짝 김이 빠졌다. 말 그대로 정말 김빠진 환타맛이 났다. 하지만 환타를 들고다니는 것보다 쿠우를 들고 다니는 것이 어린 나의 귀여움과 호감도를 올려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아빠는 술을 마시고 크으, 나는 쿠우를 외쳤던 시기였다.

아미노업 : 권상우형 보고 있나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이후로 나는 내가 남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캐릭터 음료수와 안녕을 고할 시간. 나는 가장 남자다운 음료수를 찾아 광고를 헤매었는데 그때 발견한 음료가 아미노업이었다. 이걸 마시고 권상우형이 벽을 탔는데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큰맘먹고 아미노업을 사서 마셨다. 그리고 바로 뿜을 뻔 했다. 포카리스웨트와 비슷한 맛이 났기 때문이다. 단 것 같지 않은 단맛과 신 것 같지 않은 신맛이 나는 밍밍한 맛. 권상우형이 날 속일 줄은 몰랐다. 어른남자의 세계란 이렇게 애매모호한 것이구나.

워터젤리 : 젤리야 물이야, 이것은 혁명이다

음료수 안에 젤리가 들어있다니. 이것은 혁신적인 음료수다. 시골사람들은 백날 설명해봐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손사레를 칠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이날 동물원에 가서 워터젤리를 골랐다.

첫모금 부터 충격을 받았다. 젤리물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물컹물컹 들어오는 젤리의 질감에 눈이 휘둥그래 졌다. 제법 맛있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곧 음료가 잘 나오지 않아 고생을 했다. 페트병을 이리저리 쥐어짜보고, 폐활량 연습을 하듯 입구에서 힘껏 공기를 마셨다. 그리고 동물원 한가운데서 엄마 아빠는 동물 대신 나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어린이날로 돌아가고픈 어른들에게

이제는 어린이날보다 어버이날을 더 생각해야하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어린이날을 앞두면 그때의 음료수들이 떠오른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부엌에서는 김밥 향기가, 아버지는 밖에서 자동차를 쓱쓱 닦고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동물원에 가서 내가 원하는 음료수를 사면 정말 행복할 거야.

오늘 밤에는 추억의 음료수를 떠올리며 잠을 자야겠다. 내일은 어린이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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