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음료에 이름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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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났으면 이름 석 자는 남겨야지… 어디에다가요?”

어른들의 말씀에 나는 그동안 열심히 이름을 뿌려왔다. 시험지나 이력서의 내용은 깨끗하게 비워도 이름은 똑바로 적었고, 지금은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명함을 표창처럼 뿌리며 살고 있다. 심지어 사인도 이름으로 바꿨는데.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른다. 이런 것으로는 세상이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이름은 어디에 남겨야 하나?

바로 음료다. 나의 이름으로 된 음료를 세상에 출시하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음료수를 주문하거나, 마실 때 내 이름을 부른다. 고마울 때, 맛있을 때 나의 이름을 말한다(맛없을 때도). 음료 입장에서도 이름을 공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바로 이런 점들에서 이득이 된다.


우리 할아버지가 만들었다고 자랑할 수 있다
조니 워커 Johnnie Walker

(스카이워커…아니고 존워커)
  • 장점 : 동종업계의 경로 우대
  • 단점 : 회춘은 어렵겠지…

아이폰은 새 거가 좋지만, 음료수는 오래된 것일수록 좋다. 누가 먼저 만들어왔냐는 음료를 평가하는데 가장 좋은 기준이 된다. 스코틀랜드의 블렌디드 위스키 ‘조니 워커’가 그렇다. 조니 워커는 창립자 존 워커(Jhon Walker)의 이름을 붙였다.

존 워커는 가문을 일으킨 사람이다. 1820년, 아버지를 잃고 15살에 가장이 된 그는 스코틀랜드 킬마녹의 낡은 잡화점을 구입하여 위스키를 판다(…) 하지만 위스키들이 품질이 오락가락이라는 평을 듣자 어린 존 워커는 그런 위스키를 섞어서 판매한다. 어… 어린 녀석이 술을 말아?

(잘 마네…)

존 워커의 시대에 위스키를 섞는 것은 불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맥아 원료의 위스키와 곡물 원료의 위스키를 섞는 ‘블렌디드 위스키’를 말한다. 하지만 존 워커는 여러 비율을 실험을 하였고 아들과 손자인 ‘알렉산더 워커(1, 2)’때에 합법이 되자 빛을 보게 된다.

알렉산더 워커는 기존에 팔던 위스키에 ‘존 워커’의 이름을 붙인다. 다른 양조자들이 바뀐 법에 맞춰 블렌디드 위스키를 출시할 때,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것을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게 바로 마복림 원조 떡볶이 스웩이다.

(조니 워커의 트레이드 마크, 스트라이딩 맨)

1909년, 알렉산더 워커는 만화가 톰브라운에게 냅킨에 그린 중절모 신사 그림을 받는다. 알렉산더 워커는 이 그림에 대해 “Born 1820, Going Striding(1820년에 태어나 앞으로 나아간다)”라는 평을 남겼다. 동네 식료품점에서 전 세계까지. 조니 워커라는 이름 안에는 음료의 역사가 담겨있다.


아들 사랑을 자랑한다, 다만
칼스버그 Carlsberg

(왼쪽이 아빠 J. C 야콥슨, 오른쪽이 아들 칼 야콥슨)
  • 장점 : 자식 사랑
  • 단점 : 자식이 날 안 사랑

하지만 이름은 조심해서 붙여야 한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분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칼스버그(Carlsberg)’가 그렇다. 편의점에 파는 초록색 맥주. 아니 그건 하이네켄이고.

1847년, 제이콥 크리스찬 야콥슨(J.C Jacobsen)은 24살에 칼스버그를 만들 때, 자신의 5살짜리 아들 ‘칼 야콥슨(Carl Jacobsen)’과 양조장 언덕(Berg)을 합쳐서 이름을 지었다. 자신이 개발한 ‘라거용 효모’에도 칼 야콥슨의 이름이 들어간 것을 보면 정말 아들바보다. 물론 그 아들이 성장하기 전 까지었지만.

(아들 사랑은 2018년에도 영원히…)

1871년, 유학을 마친 칼 야콥슨은 칼스버그의 신설공장을 담당한다. 제이콥 크리스찬 야콥슨은 아들이 자신이 만드는 라거 맥주가 아닌 에일이나 포터 맥주를 만들기 원했다. 하지만 칼 야콥슨은 라거 맥주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뉴 칼스버그’. 아빠와 아들의 길은 이때부터 갈라지기 시작한다.

제이콥 크리스찬 야콥슨은 칼스버그는 자신이 지은 이름이라며 아들 칼 야콥슨에게 칼스버그를 쓰지 말라고 소송전을 펼친다. 칼스버그를 두고 싸우는 아빠와 아들의 6년 법정전쟁. 당시 칼스버그 연구소에 근무한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은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두 미치광이가 상대가 지은 이름을 가리려고 표지판 크기를 점점 키웠다.”

다행히도 두 사람은 1886년 가을에 화해를 한다. 오랜만에 화목해진 야콥슨 가족은 로마로 여행을 떠난다. 안타깝게도 아버지 제이콥 크리스찬 야콥슨의 마지막 여행이었지만.


가게 이름보다 사람 이름이 외우기 쉽다
트와이닝 Twinings

  • 장점 :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이름
  • 단점 : 트와이스한테 밀릴 예정(아마)

위스키나 맥주의 경우는 양조자의 이름을 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떻게 만드는지 당최 몰라서 수입을 한 홍차에도 이름이 붙었다. 립톤(토마스 립톤), 트와이닝(토마스 트와이닝)이다. 두 사람 모두 차 생산자라기보다 수입업자다. 우리로 치면 상품 이름이 우체국 택배 같은 거 아닌가?

(차를 좋아한다면 한번쯤 보았을 로고)

1706년, 토마스 트와이닝(Thomas Twining)은 수입업체에서 번 돈으로 커피하우스를 창업한다. 문제는 당시 런던에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커피하우스가 있었다는 것이다. 런던 시민들에게 토마스 트와이닝의 커피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가져온 차는 어떨까?

1717년, 토마스 트와이닝은 차만을 판매하는 ‘골드 라이언(Gold Lion)’을 만든다. 당시에는 여성들이 카페 하우스에 출입하지 못한다는 점을 착안하여 골드 라이언에는 ‘여성들이 출입이 가능하도록’ 한다. 비록 커피하우스는 많았고, 이름도 평범 그 자체였지만. 차와 여성, 트와이닝이라는 이름 만은 런던 사람들의 뇌리에 박혔다.

(300년이 넘은 거리의 터줏대감, 트와이닝 골드 라이언)

런던의 여성들은 트와이닝의 티샵을 찾았다. 영국은 커피의 나라에서 홍차의 나라로 변한 것은 가정의 음료 습관이 변한 것이 크다. 동시에 트와이닝은 단순한 이름을 넘어 차를 블렌딩 하는 제다이 마스터 같은 느낌이 되었다. 2018년 현재는 10대인 스티븐 트와이닝(Stephen Twining)이 홍차의 세계를 이어간다.


옛 연인의 이름을 칵테일에 붙이면
마가리타 Margarita

  • 장점 : 역사적인 칵테일을 만든다
  • 단점 : 새로운 연인은 없다

술자리만 가면 고독해지는 사람이 있다. 세상 슬픈 사연은 다 겪은 것 같은 사람. 그에게 어울리는 칵테일은 ‘마가리타(Margarita)’다. 이 음료에는 슬픈 이야기가 있어. 마가리타는 존 듀레서(John Durlesser)라는 바텐더의 연인이다. 그녀는 평소에 테킬라를 담은 잔 주변에 소금을 묻혀 마시기를 좋아했다.

안타깝게도 마가리타는 여행 중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홀로 남은 존 듀레서는 그녀를 기억하기 위한 칵테일을 만든다. 테킬라 베이스에 라임이나 레몬즙을 넣는다. 그리고 물론 유리잔 주변에 소금을 묻혀야만 한다.

1949년, 마가리타는 미국 내셔널 칵테일 콘테스트에 입선을 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만약 심사위원이 마가리타에 담긴 사연을 말했으면 우승을 하지 않았을까? 원래 술자리든, 오디션이든 맛보다는 사연이 주는 울림이 크니까. 크흑.


상관없는 사람의 이름을 음료에 붙이면
닥터 페퍼 Dr. Pepper

(오른쪽이 찰스 앨더튼, 왼쪽이 찰스 페퍼 물론 앤더튼이 만든 음료입니다)
  • 장점 : 모두가 궁금해한다
  • 단점 : 아무도 답을 모른다

1880년, 전설의 음료수가 시골 약국에서 태어난다. ‘닥터 페퍼(Dr. Pepper)’. 전 세계인의 사랑과 질타를 받는 호불호 음료의 클래식이다. 하지만 이 음료수가 왜 닥터 페퍼 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탄산러들 사이에서도 의문이 오간다. 닥터 페퍼를 만든 사람은 찰스 앨더튼(Charles Alderton)이기 때문이다.

(닥터 페퍼를 사러 약국을 간다고요? 닥터 페퍼를 마셔서 약국을 가는게 아니고?)

닥터 페퍼라는 이름은 찰스 앨더튼이 근무하는 약국의 주인 웨이드 모리슨(Wade Morrison)이 지어준 것이다. 왜 닥터 앤더튼도 닥터 모리슨도 아닌 닥터 페퍼였을까? 그것은 웨이드 모리슨이 과거 버지니아에 있는 찰스 페퍼(Charles Taylor Pepper)가 운영하는 약국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사돈의 팔촌도 아니고 전 직장 상사 이름을 음료에 붙이는 패기는 어떤 걸까?

(잠깐만… 닥터 페퍼를 저렇게 마시면)

드라마 속 출생의 비밀처럼 닥터 페퍼의 정체는 꼬여간다. 웨이드 모리슨이 찰스 페퍼의 딸을 사랑해서 지었다는 소문도 있다. 누군가는 당시 버지니아 주의 주민 현황을 살펴봤더니 찰스 페퍼와 웨이드 모리슨이 함께 근무한 적이 없을 것이라는 연구도 내놓았다.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수록 닥터 페퍼를 만든 찰스 앨더튼만 잊혀진다.

어찌 되었건 당시는 콜라가 약국에서 건강보조제로 팔렸다. 닥터 페퍼는 이름 앞에 ‘닥터’란 직함을 붙인 것만으로 전문성이 있고, 효능이 있는 음료처럼 팔렸다. 그래서 닥터 페퍼는 도대체 누군데?


한국에는 왜 이름을 붙인 음료수가 없을까
칠성사이다

한국에서는 창업자의 이름을 회사나 상품에 붙이기 쉽지 않다. SM, YG, JYP를 빼고. 한국에서 음료는 개인이 만든 음료가 커졌다기보다, 기업에서부터 음료가 만들어졌다. 때문에 창업자의 이름을 붙이기 더욱 힘들다. 그나마 사람 이름이 음료에 들어간 사례를 찾자면 ‘칠성사이다’를 꼽을 수 있다. 만든 사람 이름이 치… 칠성인가? (아니다)

1950년, 칠성사이다는 동방청량음료에서 탄생한다. 이 회사에는 7명의 창업주가 드래곤볼처럼 모였다. 위대한 음료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은 법. 하지만 7명의 이름을 모두 넣었다간 끔찍한 음료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대신 7명 모두 성씨가 다르기 때문에 ‘칠성’ 사이다라고 지은 것이다. 별이 아니라 성씨. 김, 이, 박, 최… 성!

하지만 한자로 쓰자니 너무 노골적이라 성씨 성(姓)을 별 성(星)으로 바꾼다. 비록 한자는 바꿨지만 주주들의 영원한 우정과 화합을 바라는 의미도 담았다. 거의 도원결의급의 다짐.


음료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창업자의 이름을 거니 명주가 되었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는 자신의 이름을 걸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음료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음료에 적힌 이름에는 그들의 자부심은 물론, 역사, 이야기가 하나로 들어가 있다. 이제 한국도 제법 음료를 잘 만드는 나라다. 앞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음료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 정유경 사이다, 박덕배 콜라, 홍길동 에디션 맥주…

아아… 아무래도 아직 한국 정서에는 아직 무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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