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밀크셰이크를 만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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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셰이크씨.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얼마나 뜨거운 여름을 견뎌왔는지 몰라요. 방금도 제가 걸어온 길이 아스팔트인지 후라이팬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밀크셰이크를 마시지 못한 삶. 그것은 노릇노릇 구워진 굴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아이스크림에게
미안할 날씨 아닌가요

밀크셰이크 씨.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죠. 사실 저 또한 슬픈 이별을 방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제 뜨거운 손을 잡아준 그 녀석. 아이스크림이었죠. 우린 시원하기를 다짐했지만, 한국의 날씨는 그걸 바라지 않았습니다. 냉장고 속에서 자란 아이스크림은 제 입에 닿기도 전에 뚝뚝 눈물을 흘렸죠. 결국 아이스크림은 인어공주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상실감에 여러 음료를 흥청망청 마시기도 했죠. 얼음을 띄운 콜라는 금세 녹아 밍밍해졌고, 맥주는 잘못 마셨다가 속만 더워질 뿐이었죠. 그때 당신이 떠올랐어요. 밀크셰이크. 녹지 않고 마시는 아이스크림.

저는 지금 주문을 하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오 밀크셰이크. 당신은 어디에서부터 이곳까지 온 것일까요?


밀크셰이크는
원래 술이었다

밀크(Milk) 그리고 셰이크(Shake). 이 정도 영어는 민병철 토익을 다니지 않아도 해석할 수 있어요. 우유를 흔들어서 만든 음료죠. 하지만 밀크셰이크 당신이 원래 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아요.

밀크셰이크씨. 당신은 1885년 처음 기록이 되었죠. 당신이 만난 이들은 주로 바텐더였어요. 밀크셰이크는 우유에 달걀, 얼음 그리고 위스키를 섞어 만든 칵테일이었으니까요. 하마터면 우리는 서로 취한 상태로 만날 뻔한 것이죠.

다행히도 ‘위스키’가 재료에서 빠지고, 그 자리를 시럽과 맥아가루가 차지하게 되었죠. 그때부터 밀크셰이크에는 딸기맛, 바닐라맛, 초코맛 같은 메뉴가 가능해졌어요. 카페 아르바이트해보셨나요? 만드는 메뉴가 늘어날수록 사장님과 손님에게는 밝은 웃음이. 그걸 만드는 사람의 얼굴은 어두워지는 법이지요.

(밀크셰이크 제조과정. 예술점수 만점)

밀크셰이크씨. 1922년 월그린(Walgreens)에 근무하던 이반 쿨슨(Ivan Coulson)도 마찬가지였어요. 밀려드는 밀크셰이크주문에 밀크셰이크보다 이반의 손목이 먼저 나가게 생겼기 때문이죠. 그는 고민 끝에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우유와 시럽이 들어가는 거 아이스크림으로 대신하면 안 되나?’
그렇게 이반은 아이스크림 한스쿱을 밀크셰이크에 투척해요. 그 뒤로 당신의 역사가 바뀌게 되지요.


맥도날드와 밀크셰이크의
상관관계

밀크셰이크씨. 예나 지금이나 여름이면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행히 무거운 얼음과 우유를 흔들어 섞느라 바텐더들이 고생할 필요가 없어졌죠. 1922년 스티븐 포플로스키(Steven Poplawski)의 밀크셰이크 믹서기가 생겼기 때문이죠. 그 뒤로 바텐더가 아니라 기계가 밀크셰이크를 만들기 시작해요.

밀크셰이크씨. 우리는 밀크셰이크를 판매하는 영업사원 중 한 명을 잊을 수 없지요. 바로 레이 크록(Ray Kroc)이에요. 17년간 종이컵을 팔다가 당신을 만나고 17년간 밀크셰이크 믹서기를 판 중년의 영업맨을 말이죠.

1954년 은퇴 길에 접어든 레리 크록에게 믹서기 주문이 8대나 왔거든요. 센버너디노의 작은 식당에서 8개나 판다니 그는 궁금함에 그곳을 방문하지요. 맥도날드. 그곳은 맥도날드 형제가 운영하는 햄버거 맛집이었어요.

(그리고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를 차지…아니 창업합니다, 영화 파운더)

레이 크록은 밀크셰이크 믹서 판매를 그만두고, 맥도날드 형제와 동업을 하지요. 전국… 아니 전 지구에 햄버거와 밀크셰이크를 서비스하는 가게를 만들게 된 것이에요. 아직도 클래식한 햄버거 덕후들은 햄버거에 콜라가 아닌 밀크셰이크를 먹는답니다. 단짠단짠의 콤보가 108계단을 오르는 감격스러움을 느낄 수 있어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비싼 밀크셰이크

밀크셰이크씨. 하지만 저는 순댓국에는 소주, 치킨에는 맥주, 햄버거에는 밀크셰이크만을 고집하는 고지식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의 경우는 영화에서 빠졌죠. 당신이 주연이자 메인 디시인 영화 ‘펄프 픽션(Pulp Piction)’말입니다. 기승전와장창의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가 취향은 아니지만. 밀크셰이크.. 아니 펄프픽션은 정말 훌륭했어요.

(펄프픽션 그거 밀크셰이크 먹방영화 아닙니까)

맥도날드에서 우마 서먼과 존 트라볼타가 만나는 장면이었어요. 우마 서먼이 밀크셰이크를 주문하는데 가격이 무려 ‘5달러(당시 환율을 지금으로 계산하면 만원쯤)’였지요. 존 트라볼타가 놀라서 밀크셰이크를 한 입 쪽 빠는데. 맙소사. 너무 맛있는 거죠. 인정. 5달러 인정.

펄프 픽션의 기억이 많이 남아서 맥도날드에 가면 밀크셰이크가 떠올라요. 이곳에는 우마 서먼도 존 트라볼타도 없지만 밀크셰이크 당신은 언제나 만날 수 있지요.


한 모금의 밀크셰이크를
마시기까지

밀크셰이크씨. 당신은 저를 음료의 과거나 캐고다니는 신상털이라고 볼 수 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당신을 더욱 기쁘게 만나고 싶을 뿐이랍니다. 한 음료가 우리에게 닿기까지 얼마나 우연한 만남과 사건이 반복되었는지에 대한 감탄이랄까요?

드디어 나왔습니다. 세상에 모두가 밀크셰이크를 찾는 바람에 이렇게 늦게나 만났군요. 밀크셰이크를 마셔봅니다. 빨대를 타고 천천히 올라오는 차가운 달콤함. 아아 당신을 만나기 위해 여름은 계속 더워지는 걸까요?

  • 참고문헌
  • History of Milk Shakes 1880s-1930s – Highland Park Soda Fountain
  • Brief History of Milkshakes : McDonalds & Murder – Londnr
  • Walgreens.com
  • 오무라이스 잼잼 233화 <밀크쉐이트 트위스트 멀티믹서> – 조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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