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저 VS 임페리얼, 국산 위스키의 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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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 도장깨기 1년 반, 위스키 너에게 도전한다”

음료계의 최배달 마시즘의 선반에는 그동안 격파한 음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수많은 닥터페퍼와 지코, 칸타타 스파클링을 볼 때마다 그들과 치열했던 전투를 떠올린다. 하나같이 쉽지 않은 녀석이지만 이겨냈다. 그래 이 정도면 도전해도 되겠어. 위스키(Whiskey) 네 녀석에게 도전한다.

마시즘은 위스키를 왜 다루지 않은 것일까? 발렌타인을 모으고 있는 디렉터에게 자문을 해봤다. (주량이 짧아서?) 일부 맞다. (지갑이 얇아서?) 그… 그것도 맞는 말이지. (에이 위스키를 같이 마실 친구가 없어서지?) 그만해 이 팩력배야! 사실 난 위스키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거야. 한국에는 위스키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잖아!!

… 아니다. 위스키가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도 넘었다. 양반 나리부터 요즘의 대학생까지 한국사람은 위스키를 좋아한다. 물론 주량이 짧고, 지갑이 얇고, 위스키를 사줄 친구도 마실 친구도 없는 마시즘 에디터를 뺀다면 말이다. 그래서 오늘 마시즘은 한국 위스키의 역사에 대해 다뤄본다(그런데 우리가 아는 조니워커, 발렌타인, 시바스리갈은 안 나온다는 게 함정. 오직 국내 생산 위스키로 간다! 나라사랑 음주사랑).


힙스터 양반의 술
유사길

1876년, 개항 이후 조선땅을 밟은 것은 서양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가진 종교와 과학이 들어왔고, 그들이 마시는 위스키가 우리 땅을 밟았다. 위스키에 대한 국내 최초의 기록은 1882년 한성순보. 그런데 이름이 이상하다. 위스키가 아니라 ‘유사길’이라굽쇼?

그렇다. 당시에는 새로 들어온 외국 문물을 한글 패치시키던 때였다. 히딩크를 히동구라고 부르듯 많은 외국술들은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위스키는 ‘유사길(惟斯吉)’, 브랜디는 ‘발란덕(撥蘭德)’, 샴페인은 ‘상백윤(上伯允)’이다. 이름 하나 바꿨을 뿐인데 동양의 음료 같지 않은가.

(19세기 말 외국인이 찍은 위스키 시음현장, 양반나리여 손이 없나 잔이 없나)

위스키… 아니 유사길은 젊은 양반들의 파티 음료였다. 1894년에 조선을 여행한 ‘이사벨라 버드숍’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에는 유사길을 즐기는 파티 피플에 대한 기록이 적혀있다. (비싸지만) 새롭고 독한 위스키에 많은 양반들이 매료되었다. 그리고 양반들이 즐기던 유사길은 일제강점기 모던보이들이 잔을 이어받는다.


위스키 시대의 개막
도라지 위스키

유사길… 이것은 음주 전 여흥 같은 이야기에 불구하다. 위스키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다. 미군을 중심으로 그들의 보급품인 위스키가 대중들에게 흘러들어 갔기 때문이다.

위스키의 참맛을 알아버린 한국인. 그들은 ‘셀프 메이드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한다. 닭표 위스키, 고래표 위스키 같은 유사 위스키들이 생겨난 것인데, 실상은 양조알콜에 위스키 향과 색을 흉내 낸 것에 불과했다. 사실 기분만 낸다면 진품명품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문제는 이 가짜 위스키를 마시고 죽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위스키 부족을 겪던 미군도 안전하지 못했다. “코리안 위스키는 둘이 마시다 하나가 골로 간다고!”

이때 위험한 음주의 시대를 끝낼 위스키가 밀수된다. 일본산 ‘도리스 위스키(Torys Whisky)’다. 가끔 어른들이 듣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음악에 나오는 “도라지 위스키 한 잔~”의 그 녀석이 맞다.

(도리스가 도라지로 피어났습니다)

도리스 위스키는 왜 도라지 위스키라고 불렸을까? 그것은 한국에서 판매되는 도리스 위스키가 일본 산토리가 아닌 부산 국제양조장에서 만든 음료였기 때문이다. 도리스 위스키의 밀수 현황을 보고 카피닌자 카카시도 울고 갈 솜씨를 발휘한 것. 국제양조장의 도리스 위스키는 한국에 위스키 시대를 연다. 물론 1960년 상표권 침해에 걸릴 때까지만.

도리스 위스키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국제양조장은 이름을 ‘도라지 위스키’라고 변경한다. 사실 급조된 이름이라 ‘도라지 위스키’에는 도라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더 문제는 도리스도 도라지도 위스키 원액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유사 위스키였다는 것이다.


위스키 춘추전국시대
너희가 위스키를 아느냐? 나도 몰라

그렇다. 한국 위스키의 역사는 ‘언제쯤 진짜 위스키를 마셔볼 수 있을까?’하는 갈망의 역사다. 도라지 위스키의 흥행으로 한국사람들은 위스키 애호가가 되었지만 위스키를 마셔본 적이 없는 아이러니한 사람이 되었거든.

하지만 대중의 욕구에 맞춰 진짜 위스키 원액을 섞은 위스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백화양조의 ‘죠지 드레이크’ 진로의 ‘JR 위스키’가 대표적이다. 따지자면 이것들도 위스키는 아니었다. 당시 주세법에는 위스키 원액이 20%가 되어야 하는데 이 둘은 19.9%였거든.

(힝 속았지, 이번에는 진짜 위스키인줄 알았다)

죠지 드레이크와 JR 위스키는 왜 0.1%를 올리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세금 때문이다. 진정한 위스키가 되는 순간 세금폭탄을 맞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세금을 피해 가려던 위스키 회사들은 정부의 철퇴를 맞는다.”너네 위스키 아니면서 위스키 인척 광고했지 벌금 땅땅” 결국 잘 나가던 죠니 드레이크, JR위스키는 생산중단이 된다.

이후는 정부가 위스키의 알콜도수를 캐리했다. 기존의 원액함량 20%를 25%로 높이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게 한다. 이때 나온 국내 위스키들이 백화주조 베리나인, 진로 길벗, 해태주조의 드슈다. 이후에는 위스키의 기준을 30%로 높이니까 베리나인 골드, 길벗 로얄로 진화한다. 정부의 정책을 따라 20%… 30%… 이대로 가다가 스카치위스키 원액 100%도 만들어 버리는 거 아냐? 생각만 해도 취하는 시절이었다.


정부의 비밀지령
국산 위스키 원액 개발계획

1982년, 위스키 원액 30%만 해도 “이건 완전 위스키 아냐?” 하며 설레 하던 시대. 영국 스카치위스키 협회(SWA)에서 항의가 왔다. 한국산 위스키는 수입원액 30%를 섞은 걸 가지고 ‘연산 12년’을 붙이는 등 위스키 원액 100%처럼 판매한다는 것. 이런 광고 문구를 떼지 않으면 원액공급을 중단시키겠다고 외친다. 일동 시무룩.

하지만 위스키를 향한 한국의 열정은 멈출 수 없다. 이미 이런 일을 예상하고 국내에서 위스키 원액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하야 ‘국산 위스키 개발계획’. 정부는 3개 업체에 위스키 제조면허를 발급한다. 그리고 1982년 첫 국산 몰트 위스키 원액이 만들어진다. 비록 지금은 못쓰지만, 4~5년 숙성시키면 100% 국내산 위스키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토록 정부가 위스키에 힘을 썼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문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행사. 손님맞이에 위스키만큼 좋은 것이 없잖아.

(패스포트에 패스포트 라임 참ㅋㅋ)

하지만 국산 위스키가 만들어지기 전에 100% 위스키 원액을 사용한 진짜 위스키들의 시대가 열렸다. 베리나인 골드에서 킹이 붙은 백화양조 ‘베리나인 골드 킹’이 나왔고, 진로에서는 ‘VIP’라는 위스키를 냈다. 의외로 승자는 씨그램 계열에서 나온 ‘패스포트’. 세계 114개국에서 즐기는 진짜 위스키라는 명성과 함께 1위였던 베리나인 시리즈를 누른다. 베리나인을 만들던 백화양조는 오비씨그램에 인수된다.

숙성의 시간이 지났다. 1987년 국산 위스키 원액의 일부를 사용한 ‘코리안 신토불이 위스키’가 나올 때가 된 것이다. 진로의 ‘다크호스’와 오비씨그램의 ‘디프로매트’가 그 주인공이다. “어서 외국 것들을 몰아내자!” 하지만 기대와 달리 소비자들에게 싸늘한 외면을 받았다. 왜냐하면 너무 비싸서.

1991년 국내 위스키 원액 사업은 완전종료된다. 허무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애초에 위스키는 숙성과정에서 일부가 증발하기 마련이다. 스코틀랜드 기후에서는 연간 2%가 증발하는데, 한국은 5%가 증발했다. 12년을 숙성하면 위스키의 45%가 공중에 날아가는 것이다. 그만큼 경쟁력이 없었다. 코리안 위스키 대실패.


위스키에 나이가 있나요
임페리얼 VS 윈저

1991년은 국산 위스키 원액 포기와 함께 주류 수입을 개방한다. 그동안 주로 수입되었던 것이 위스키 원액이었다면, 이제 해외에서 만들어진 위스키들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들어온 때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위스키에 대한 기준이 바뀐다. 그전까지는 위스키 원액 100%에 놀라고 감동하던 주당들이 12년은 되어야 위스키 대접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에 ‘임페리얼’과 ‘윈저’가 있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위스키 시장의 70%는 ‘패스포트’ 같은 6년 숙성의 스탠더드급 위스키였다. 진로는 한 단계 더 높은 숙성 12년짜리 프리미엄 급 위스키를 낸다. 바로 1994년 ‘임페리얼 클래식’의 등장이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임페리얼 12년은 맛은 12년으로 올리고, 양은 700ml에서 500ml로 줄여 가격대를 맞췄다. 임페리얼의 등장으로 12년 아래의 위스키들은 거의 사라졌다. 발렌타인, 시바스 리갈 등 세계적인 브랜드도 한국을 위해 500ml 제품을 따로 만들 정도였다.

(임페리얼과 윈저 덕분에 한국사람은 위스키에 나이를 본다. 장유유서다)

임페리얼이 단숨에 위스키 1위로 도약한다. 사실 두산씨그램은 ‘퀸앤’이라는 6년짜리 스탠더드 위스키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눈물을 삼키며 ‘윈저 12’라는 후발주자를 출격시킨다. 하지만 1위는 철옹성이었다. 결국 두산씨그램에서는 윈저 15년을 준비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다고. 이미 임페리얼 쪽도 15년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자 도박을 건다. 아니 우린 17년으로 간다.

그렇게 2000년 초 마스터 블랜더 ‘더글라스 머레이’가 블랜딩 한 ‘윈저 17년’이 출시된다. 비슷한 시기 ‘임페리얼 15’도 나타났다. 관계자들은 인지도나 가격 면에서 모두 임페이얼의 승리를 예측했다. 하지만 윈저 17의 KO승. 윈저 17은 윈저 12의 판매량까지 올려준다. 그리고 2006년을 기점으로 위스키 시장의 1위로 발돋움한다.

그 사이 진로는 페르노리카 코리아에 합병이 되고, 두산씨그램은 디아지오에 합병이 되었다. 임페리얼과 윈저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연산을 올려가며 국내 위스키 시장의 프리미엄화를 이끈다. 손오공과 베지터처럼 말이다.


위기와 변화
위스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위스키 시장은 2008년 최고점을 찍은 뒤에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술값은 오르는데 월급은 오르지 않는다거나, 술을 마시는 트렌드가 점점 혼술 위주로 바뀌어 간 것을 들기도 한다. 위스키 덕후국이자 직접 생산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일본 역시 위스키 시장이 하향세인 것을 보아선 세계적인 현상이 아닐까 싶다.

위기는 곧 변화해야 할 때를 말한다. 위스키 업계는 다양한 대중의 취향에 맞취 변화된 위스키를 선보이고 있다. 보다 고급 취향을 위한 싱글 몰트 위스키를 가져오는 한편,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도수가 낮은 저도주나 위스키 칵테일인 하이볼을 선보이고 있다. 무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의 위스키 사랑이 ‘진정한 위스키’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면, 남은 100년은 한국인을 위한 위스키를 만들어 가는 길이 되지 않을까?


번외 : 그래서 캪틴큐와 나폴레옹은요?

‘캡틴큐’는 1978년 롯데주류에서 나온 양주… 따지자면 럼이다. 국산 주정에 위스키 원액을 20% 섞은 것으로 여러 증류주들을 혼합한 혼종임에도 발매 첫해 1,000만 병 이상이 팔리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대학생들을 시간여행을 보내줬다. 마시고 뻗으면 다다음날 일어나는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캡틴큐의 대항마 ‘나폴레온’은 무려 브랜디다. 나폴레온이라는 이름 자체가 코냑의 등급(나폴레옹 코냑)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캡틴큐는 사라졌지만 나폴레온은 현재도 판매 중이라고 한다. 상표를 볼 때는 과거로 추억여행을 마시면 다다음날로 시간여행을 하는 현존하는 가장 저렴한 타임머신이 아닐까?

  • 참고문헌 
  • 위스키의 지구사, 케빈 R 코사르, 휴머니스트
  • 120년 전 조선 양반들도 洋酒를 마셨다, 허동연, 조선일보
  • 할리우드 영화 보고 ‘도라지 위스키’ 한 잔… 한 +미 ‘변종문화’ 메카, 박정배 음식칼럼리스트, 문화일보
  • 위스키, 부산 입맛 잡아야 전국 잡는다, 황상욱, 부산일보
  • 일본에 먹으러 가자(kcanari.egloos.com), 까날, ++ 여기 짱추 존경합니다.
  • 양주-진로-백화, 신성순, 중앙일보
  • [대한민국 라이벌 大戰] 위스키 업계의 宿敵 – 임페리얼 vs. 윈저, 서철인,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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