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자만이 음료를 쟁취한다, 음료 시음회를 즐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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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즘의 시계는 오늘도 바쁘게 돌아간다. 매일 아침 3곳의 편의점을 다니며 새로운 음료를 찾는다. 시간이 남으면 대형마트에 들러 비싼 술들을 둘러본다. 장바구니 가득 음료를 사 오면 이제는 마실 차례다. 가끔은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 식사대용 음료를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글은 언제 쓰냐고? 그게 내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다. 하루 종일 마시기만 하느라 글을 안 쓰고 있었거든. 마감 앞에 목이 바싹바싹 타기 시작한다. 이 문제를 해결해줄 오늘의 음료는…


직장생활의 오아시스
음료 시음회

(음료를 공짜로 준다니 굴러들어온 소재를 놓칠 수 없지)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일주일에 며칠씩 마시즘이 출몰하는 위워크(We work). 이곳의 사람들이 단체행동을 할 때는 세 가지 경우뿐이다. 출근과 퇴근, 그리고 라운지에서 먹을 것을 무료로 나눠줄 때다. 일이 중요하지 간식이 무슨 소용이람? 물론 나는 일을 시작도 안 했기 때문에 라운지로 떠난다. 비켜요!

라운지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벌써 모여있다. 그런데 오늘은 간식 같은 게 아니었다. 음료였다. 그래! 이것은 시음회 현장을 리뷰하라는 하늘의 계시다. 이렇게 날로! 소재가 굴러들어 오다니!

시음회 현장은 스타크래프트 같았다. 직장인 한 부대가 미네랄을 캐러 온 SCV처럼 무리를 지어 이동했다. 하지만 하얀 옷을 입은 진행요원이 그들을 마크했다. ‘풀무원 녹즙’이라고 적힌 옷을 입고 있는 진행요원의 컨트롤이 임요환이었다. 다 큰 어른들을 줄 세우고 상담까지 진행했기 때문이다. 마치 이틀 전 키자니아에서 직업 체험을 한 조카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그 프로그램도 풀무원에서 했었지 아마.


빠져나가는 음료를 보면
직장의 상태를 알 수 있다

(가장 빠르게 사라진 식물성 유산균 초록이)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대로 뒤에서 주춤주춤 하다가는 시음하는 음료가 바닥 날 것 같았다. 이곳에서 선보이는 음료는 ‘식물성 유산균’이다. 빨간색과 초록색 그리고 보라색까지 3종류가 있었다. 진행요원은 스핑크스의 퀴즈처럼 구경 온 사람에게 물음을 건넸다. “어제 술 마셨죠?”, “이제 출근하세요?”, “빵 좋아하시죠?” 그렇다. 그들은 직장인들의 증상에 따라서 나름의 음료 처방을 해주고 있었다.

나는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3가지의 음료 중에 가장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 있었던 것. 바로 초록색 식물성 유산균이다. “어제 술 마셨죠?”라는 질문에 답을 할 때 받을 수 있는 음료다. 진행요원들은 “숙취해소에 좋다”며 초록색 식물성 유산균을 건네주었다. 그렇다. 위워크에는 술쟁이들이 가득하다.


프로페셔널의
음료 쟁취 방법

(최고의 답을 내린 자에게 음료샘플을 주겠다)

어떤 답을 해야 세 가지 음료를 다 마실 수 있을까? “어제 술을 마셔서 푸석푸석한 얼굴로 출근했어요. 빵을 먹고 싶네요”라고 말을 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초면에 이렇게 긴 문장을 말해본 적이 없다. 결국 내가 가진 음료계의 권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업계 전문가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음료를 하나라도 더 얹어주지 않을까?

“흠흠… 풀무원녹즙에서 신제품이 나온 모양이네요”
“아 고객님 식물성 유산균은 2010년도부터 나왔답니다 ^^”

아는 척 실패. 사실 알 턱이 없었다. 진행요원은 이 음료는 방문판매로만 마셔볼 수 있다고 말했다. 뭐야 편의점이나 마트에 팔지 않는 음료라니! 절망한 나는 “그냥 3개 달라”라고 순순히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음료를 모두 받아왔다. 살펴보니 넉살 좋은 사람들은 식물성 유산균 음료는 물론 각종 녹즙을 샘플로 마시기도 했다. 아예 사무실에서 직원들을 끌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식물성 유산균
나에게 무엇을 먹인 거야?

(보고있나 타노스, 음료는 이렇게 모으는 거다)

음료 리뷰를 써야 하는데 시음회를 기웃거린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일해라 마시즘! 이제 본격 리뷰의 시작이다. 첫 타자는 레드&오메가라고 쓰여있는 빨간색 식물성 유산균이다. 이 녀석은 과일의 상큼함을 가진 유산균 음료 속에 오도독 씹히는 알갱이가 들어있었다. 치아씨드라고 불리는 이것 덕분에 택배 뾱뾱이를 터트리듯 씹어 마시는 재미가 있었다.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이다. 푸룬&바이오라고 쓰여있는 이 녀석은 빨간색보다는 무거운 과일맛이다. 과묵한 포도를 먹으면 이런 맛일까? 상큼하긴 한데 진중하다. 자잘 자잘한 치아씨드 대신 곤약이 들어있어서 씹어먹는 재미도 다르다. 아까 장 트러블에 이거 마시라고 했는데.

마지막은 시음회의 인기상품인 초록색이다. 식물성 유산균 그린&밀크씨슬. 이전까지의 녀석들이 상큼하고 달콤했다면 그린&밀크씨슬은 쌉싸름한 풍미가 나서 내 취향이었다. 약간의 씁쓸함이 음료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법이지. 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지?

“아 그거 명일엽이래요. 원래 엄청 쓴 거라던데”

뭐지! 내게 약초를 먹이다니. 지난 수년간 독특한 음료만 찾아마셨던 나의 몸은 강제 힐링에 괴로워했다. 이래서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조심하라고 했는데! 고맙습니다.


세상에 숨어있는
음료를 찾아서

시음회가 끝났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업무와 마감에 쫓기는 이들에게 이 잠깐의 시간은 여유로움과 함께 건강을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뜻밖의 건강 챙기기는 물론 마감까지 해결한 마시즘 역시 수고했다(매주 하나씩 열린다면 참 좋을 텐데… 인간의 욕심이란).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아직 한국에는 내가 보지 못한 음료들이 많다는 것이다. 시음회와 방문판매라… 낯 가리기로 유명한 마시즘이 만날 수 없는 음료의 세계였다. 생각해보니까 식물성 유산균은 4종류인데 3개밖에 마시지 못했다고!

나는 위워크를 떠나는 진행요원을 향해 그들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소리로 크게 외쳤다. “도전이다! 언젠가 너희를 정복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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