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특집] 맥주가 당기는 영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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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챙기는 일, 그것은 설날 특선영화를 찾는 것이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면 언제나 신문을 보는 손길이 바빠졌다. KBS1, KBS2, MBC, SBS 편성표를 보며 보고 싶은 영화를 체크했기 때문이다. 따끈한 방바닥에 누워서 온 가족이 보는 명절 특선영화는 어떤 극장보다 즐거운 기억을 남겨주었다.

이제는 모두가 커버렸다. 옛날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우리에게는 온 가족이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기쁘다. 음료계의 박평식. 이럴 줄 알고 맥주가 맛있는 영화들을 준비했지. 오늘은 보기만 해도 맥주가 당기는 영화 이야기다.


1.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

(기네스를 마시는 영국인을 건들면 주옥되는 거야, ⓒ킹스맨)

“멋진 기네스를 끝까지 마시고 싶은데 그냥 나가주면 안 되겠나?”

만약 당신이 양복을 입고 기네스를 마시는 영국 남자를 마주친다면 그의 성미를 건드리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이하 킹스맨)>를 보고 얻은 하나의 교훈이다. 자칫 그의 음주를 방해했다가는 그의 멋진 액션에 낙엽처럼 날아가는 수가 있다.

잠깐의 씬일 뿐이지만 영화관에서는 오만 생각을 다 들게 하는 장면이었다. ‘왜 나는 수트를 입지 않았나’, ‘왜 나는 호신용 우산도 없이 다니는가’, ’왜 나는 기네스가 아니라 콜라를 마시고 있는 거지’ … 그리고 오늘 기네스를 들고 킹스맨을 볼 시간이 왔다.


2. 괴물

(하이트가 가장 맛있을 때는 괴물굴에 갇혔을 때, ⓒ괴물)

(나가면 뭘 먹고 싶냐는 질문에) “맥주, 시원한 맥주”

온 가족이 모이는 민족의 명절에 외화는 어렵다는 분을 위해 준비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다. 근데 이건 괴물 때문에 온 가족이 고생하는 영화잖아! 나온 지가 제법 되었지만 여전히 유머러스하고 감동적이다. 무엇보다 국산 맥주 ‘하이트’가 중요 오브제로 등장한다.

초반에는 중학생이 된 딸에게 맥주를 건네주는 아빠를 향해 “뭐야, 아빠 맞아?”라고 투정을 부리던 현서는. 괴물의 둥지에 갇힌다. 함께 갇힌 꼬마애가 나가면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묻자 현서는 “맥주, 시원한 맥주”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때 괴물의 둥지에 하이트 캔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희망의 상징인 맥주. 현서는 탈출할 수 있을까?


3.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은 초능력?, ⓒ엑스맨)

“비트버거죠 마음에 들죠?”

엑스맨(마블영화)를 좋아한다면 추천하는 작품이다. 기존 시리즈에 성질 나쁜 초능력 할아버지(?)로 나오던 에릭(매그니토)의 젊은 시절 폭풍간지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성장한 에릭이 복수를 위해 술집을 찾아온 씬. 적들은 그의 정체도 모르고 함께 맥주를 마시자고 요구한다. 잔이 비워질 때까지 긴장과 즐거움이 파도친다.

영화 이름만큼 맥주도 퍼스트 클래스다. 에릭이 마시는 맥주가 바로 맥덕국 독일의 ‘비트버거(Bitburger)’이기 때문이다. 제발 내가 맥주를 마실 때도 저런 모습이었어야 할 텐데. 자괴감이 들 정도로 너무 멋있게 마신다.


4. 쇼생크 탈출

(군대에서 끓여먹는 라면… 그리고 감옥 맥주, ⓒ쇼생크 탈출)

“마치 우리는 자유인처럼 맥주를 마셨다. 부러울 게 없었다”

엑스맨이 혼자 마시는 맥주 씬의 정석이라면, 쇼생크 탈출은 단체로 마시는 맥주 씬의 레전드다. 사람들이 괜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 장면’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 앤디가 간수(이 영화는 교도소가 배경이다)에게 맥주를 얻어 수감자들과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다. 옥상에서 수감자들은 웃으며 맥주를 마신다. 마치 세상을 다 다 가진 듯이.

글로 표현할 수 없다. 그냥 미친 장면이다. 너무나 궁금해서 무슨 맥주를 마셨나도 찾아봤다. ‘스트로우즈 보헤미안(Stroh’s Bohemian)’이라는 맥주다. 독일에서 미국 디트로이트로 이주한 ‘버나드 스트로’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1984년에 생산중지되었다가, 2016년부터 다시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가자! 교도ㅅ… 아니 디트로이트로!


5. 굿 윌 헌팅

(짬타임에 마시는 맥주에서 반했다, ⓒ굿 윌 헌팅)

“넌 우리한테 없는 재능이 있어”

‘굿 윌 헌팅’은 동네 친구들과 공사 바닥을 전전하며 재능을 낭비하던 천재소년이 멘토를 만나 변하는 영화다. 주인공인 윌은 슬램덩크로 친다면 정대만 같은 녀석이다. 윌에게는 처키라는 친구가 있다. 왜 이렇게 설명충이 되었냐고?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나온 짬타임에 나누는 맥주와 대화 때문이다.

맥주를 마시면서 처키는 윌에게 진심을 말한다. 너는 우리처럼 살기에는 아깝다고, 내 생에 최고의 날은 너희 집에 갔을 때 네가 떠났을 때(환경을 벗어나 꿈을 찾을 때)라고 말한다. 이후 처키가 윌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윌이 집에 없다. 처키는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다른 친구들 역시 윌의 존재를 묻지 않는다. 맥주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해줄 친구가 있었다면! 하는 따뜻한 영화다.


6. 로스트 인 더스트

(마감을 앞둔 마시즘의 모습, ⓒ로스트 인 더스트)

“가난은 전염병 같죠. 하지만 내 자식들은 안돼요”

아빠는 술에 취하면 항상 ‘나처럼 살지 마라’라는 말을 달고 사신다. 거친 환경을 살아온 부모님과 함께 보기 좋은 명작 영화다. 거친환경 속에서 자란 두 형제의 우정을 그리는 영화. 인생의 위기에서도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면서 평화를 찾는 현대판 서부영화다.

로스트 인 더스트는 앞선 영화처럼 맥주에 대한 명대사라거나, 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물 마시듯이, 숨 쉬듯이 맥주를 마신다. 그들이 마주한 상황에서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삶이 꺼끌꺼끌해질 테니까. 영화에 몰입해서 보다 보면 나 또한 목이 마르다. 맥주가 마시고 싶다.


7. 지구가 끝장나는 날

(못 마시고 죽으면 한이 되니까, ⓒ지구가 끝장나는 날)

“끝내지 못한 일이 있잖아”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까? ‘지구가 끝장나는 날’의 주인공들은 지구를 구하지도, 사과나무를 심지도 않는다. 그저 23년 전 완성하지 못한 술집 투어를 돌뿐이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로 유명한 에드가 라이트의 병맛 넘치는 코미디 영화다. 마시즘의 상상력은 이것에 비하면 뭐 개구쟁이 수준이지.

‘지구가 끝장나는 날’은 여러모로 병맛이다. 중년이 된 친구들이 옛날 술집에 가서 옛맛이 나지 않는다면서 투덜거리고 있고. 그것을 우주적 음모론으로 꼬는 과정이나. 갑자기 훅 들어온 외계인까지. 감독의 뇌가 KTX를 타고 먼저 떠나버린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재미있다는 것. 그리고 맥주가 당긴다는 것이다.


맥주와 함께하는 시네마 천국

명절에 온 가족이 보는 영화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 따뜻한 방과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맥주만 있다면 그곳이 시네마 천국이 아닐까? 명절은 다가왔고,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맥주를 챙겨서, 리모컨을 드는 일뿐이다.


번외 : 소주가 당기는 영화는 없나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최강이다. 다만 영화와 현실의 괴리가 정우성과 나의 차이만큼이나 심하다. 소주잔을 앞에 두고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라는 말은 상상으로도 하지 말자. 사귀고 있는 사람도 도망칠 수 있다(물론 영화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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