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미국의 낭만의 경주, 티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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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장 잘 보는 레이스
그것은 배송 조회다”

온라인 쇼핑을 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물건이 도착하기 전까지 하염없이 배송 조회를 클릭하는 사람의 마음을. 오늘의 마시즘도 마찬가지다. 왜 하필 사려고 한 음료가 외국에 있고 돈을 냈는데 감감무소식이며, 내일 온다는 녀석은 한국의 버뮤다 삼각지대 옥천 Hub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가. 정말 살 떨리는 레이스가 아닐 수 없다.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850년대의 영국은 중국에서 만든 차의 배송을 두고 살 떨리는 경기를 했을 정도니까. 당시 영국인들은 가장 빨리 차를 싣고 도착하는 배에 열광했고, 택배회사(배)들끼리 대대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오늘은 영국과 미국의 로켓배송… 아니 ‘티 레이스(Tea Race)’에 대한 이야기다.


런던 항구에서 낯선 배를 만나다

(이전까지는 왼쪽처럼 몸체가 둥근 배가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후 오른쪽처럼 클리퍼선이 표준이 된다)

1850년 12월 3일, 런던의 항구에 미국이 만든 배 ‘오리엔탈호’가 정박한다. 영국인들은 몇 가지 충격을 받는다. 먼저 배의 모양이 뭉툭하지 않고 날카롭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영국의 배가 아닌 미국 배가 중국의 차를 싣고 왔다는 것에 대해. 마지막으로 중국에서 런던까지 영국의 배송보다 2배 빨랐던 것에 대해 충격을 받는다.

영국이 차 무역을 독점했을 때는 배송시간에 대한 압박이 없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차가 런던에 닿는 데에는 10~15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무역자유화가 되면서 미국에서 만들어진 빠른 배들이 90여 일 만에 중국에서 런던으로 차를 배송한 것이다. ‘티 클리퍼(Tea Clipper, 시간을 자르듯이 빨리 오는 쾌속 범선)’ 시대의 탄생.

<런던타임스>는 “우리는 속박에서 갓 풀려난 거대한 적과 경쟁해야 한다”며 빠르고 날렵한 배를 만들어야 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미국의 티 클리퍼를 따라서 배의 모양을 바꾸고, 매년 중국에서 갓 수확한 차를 런던까지 배송하는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영국과 미국의 자존심을 건 ‘티 레이스(Tea Race)’의 시작이다.


티 레이스, 차보다 더 열광하는 배송전쟁

(1866년 티레이스의 태핑호와 에어리얼호)

아시다시피 당시 영국은 숨 쉬듯이 홍차를 즐겨야 하는 나라다. 당연히 가장 빨리 신선한 차는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었고, 선장과 선원에게는 막대한 인센티브가 주어졌다. 매년 이런 일이 반복되니, 중국에서 출발한 배가 런던항에 닿는 날이 영국에서 가장 핫한 행사가 되었다. 사교계는 물론 언론, 수송업자, 농민 등 전 국민이 주목하는 행사가 되었다. 배에 따라 팬클럽이 생기고, 도박이 이뤄질 정도였다.

가장 흥미진진한 경기는 1866년의 티 레이스다. 5월 28일에 중국 푸저우항에서 40여 척의 배가 출발한 것이다. 인도양을 가로지르고, 아프리카 대륙의 희망봉을 찍고, 영국에 들어갈 때 까지도 접전이 펼쳐졌다. 결국 9월 6일 아침 10시에 태핑호(Tapping)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20분 뒤에 에어리얼호(Ariel)가 나타났다. 사실 영국 템스강 어귀까지는 에어리얼호가 앞서 있었다고 한다.

99일의 항해가 단 20분의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3등인 세리카호(Serica)도 몇 시간 후에 도착할 정도로 박진감이 넘치는 경기였다. 보고 있나 미국? 바로 이게 대영제국의 선박이다!(라지만 미국은 남북전쟁 때문에 경쟁에 뛰어들지 않았다는 것이 함정).


전설이 된 비운의 티 클리퍼, 커티샥

(티 클리퍼 시대의 마시막을 장식한 커티샥, ⓒLauair)

티 레이스 경쟁은 1869년 세계에서 가장 빠른 티 클리퍼 ‘커티샥(Cutty Sark)’을 만들기까지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티 클리퍼이자, 한국에는 위스키 이름으로 유명한 그 녀석이다.

하지만 커티샥은 불운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운항 중에 항상 사고가 있어 ‘테르모필레호’에게 경쟁에서 졌다. 그리고 커티샥이 만들어진 해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어 중국-영국의 운송길이 크게 단축되었다.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지역이라 티 클리퍼 같은 범선보다는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기선이 차 운송선으로 되었다.

티 클리퍼들은 이제 차가 아닌 다른 물품을 운송하거나, 군사용 등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커티샥의 불운은 그치지 않았다. 일단 1등 항해사가 살해당하기도 했고, 선장은 자결을 했다. 1882년에는 선원 절반이 굶어 죽고, 커티샥 또한 너덜너덜해져서 뉴욕항에 도착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장이 바뀐 이후에는 숙적인 ‘테르모필레호’를 이기기도 했다. 심지어 1889년에는 당시 최신식 기선이었던 ‘브리타니아호’보다 빠르게 항해를 기록하는 미친 기록을 세웠다. 단지 바람만으로 최신식 기선을 압도한 기록은 커티샥을 전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운송과정이 차를 특별하게 만든다

티 레이스, 19세기 가장 극적인 이벤트이자 차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시절이 끝났다. 하얀 날개(돛)를 가진 티 클리퍼들이 사라지자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티 클리퍼들은 운항 중에 사고나, 전쟁 등으로 침몰이 되어 사라졌다. 오직 커티샥만이 영국 그리니치에 정박되어 있다.

티 레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시는 순간만큼이나 기다리는 순간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당시 영국 사람들은 홍차의 풍미에는 맛뿐만이 아니라, 중국에서 런던으로 항해하는 티 클리퍼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배송 조회를 다시 눌러봤다. 옥천 hub. 야이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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