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테라가 출동한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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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맥주스럽지 않다
그런데 이게 칭찬이 맞나?”

내심 기다리던 신상맥주 ‘테라(TERRA)’에 대한 평을 줄이자면 다음과 같다. 탄산은 오밀조밀하고 보존력이 좋다. 맛은 하이트(Hite)보다 무겁고, 맥스(Max)보다는 가볍다. 풍미를 잘 잡은 맥주. 하지만 무엇보다 맥주를 마신 후에 잡맛이 없이 깔끔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말을 붙인다. ‘국산맥주스럽지 않은데?’

한국을 양분하던 맥주들은 바다를 건너 들어온 수입맥주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매주 금요일 대형마트의 카트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 거의 9년을 고전했던 하이트진로는 ‘테라’라는 제품을 냈다. 그래서인지 맥주에는 비장한 기운이 가득하다. 그렇다. 테라는 이 맥주전쟁을 끝내러 왔다.


9년 만의 새 옷
하이트진로 맥주의 변신

(마시즘의 성장기를 보는 듯한 하이트맥주 SET)

시간을 돌려보자. 처음으로 맥주가 맛있다고 느낀 것은 대학교 신입생 MT에서였다. 숙소로 가는 버스를 빌려준 곳이 하이트맥주여서 우리는 이동 중간에 공장 견학을 갔다. 버스도 빌리고, 맥주도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방금 만든 생맥주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니! 배가 부르다는 게 한이 될 정도로 많이 마셨다.

물론 이제는 화석이 된 학번의 이야기다. 그 사이에 많은 맥주가 나왔다. 부드러운 거품과 맛이 깊은 맥스(Max), 극단적으로 잡미를 없앤 드라이 맥주 드라이 D(Dry D), 매니아들 사이에서 없어서 못 산다는 퀸즈에일(Queen’s Ale)도 있었다. 하지만 ‘4캔에 만원’이라는 수입맥주의 대동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격이 비슷한데, 뭔지 몰라도 외국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느낌?

결국 생산량이 떨어졌다. 하이트진로에서 하이트를 빼고 진로(참이슬)로만 간다는 전망도 있었다. 하하. 사실 진지한 사정은 잘 모른다. 그저 하이트맥주 사람들은 슬픔을 달랠 때 ‘참이슬을 마실까, 하이트맥주를 마실까?’정도의 생각만 했을 뿐이다(아무래도 섞어마셨겠지?).

하지만 다음 턴을 준비 중이었다는 게 함정. 9년 만에 맥주사업의 마침표를 찍을 녀석을 만들었다. 바로 청정라거 ‘테라’다. 잠깐 라거는 알겠는데, 청정은 뭐야.


좋아 ‘자연’스러웠어

(한 병은 1테라, 두 병은 2테라.. 죄송합니다)

맥주계의 외장하드 … 아니 ‘테라’의 슬로건은 ‘청정라거 시대의 개막’이다. 평화로운 슬로건과 다르게 광고에서는 온갖 태풍을 일으키던데, 이 무슨 일기예보 같은 시추에이션인가. 청정함이라면 빠질 수 없는 사무실의 미화부장! 마시즘이 청정라거를 찾으러 나갔다. 마트마다 포스터는 있는데 제품은 동이 나거나 없었다. 과연 소문처럼 남은 자리 없이 청정하군(아니다).

마트를 돌아다니며 생각했다. 테라 시음회를 갔다면 이 고생을 안 했을 텐데. 하지만 고맙게도 배달이 왔다. 드디어 개봉되는 초록색 몸체. 테라의 라벨에는 ‘From AGT’라는 문자가 쓰여있었다. 갑자기 드리운 수능 영어의 기운. 하지만 AGT가 무인 경전철(Automated Guideway Transit)의 줄임말이라는 것은 지하철 좀 타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 골든 트라이앵글(Australian Golden Triangle)’이란다. 검색을 해도 틀리다니 이걸 누가 맞춰!

진정하자. 오스트레일리아, 즉 호주가 어떤 나라인가. 캥거루나 오리너구리처럼, 신이 모든 동물과 식물을 만들고 남은 부품으로 새로운 생명을 만들었다고 불리는 나라가 아닌가(아니다). 자연도 공기도 청정한 이곳에서도 농업으로 유명한 곳이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만든 맥아만을 사용했다는 자부심이 테라의 정체성이다. 이러한 청정정신을 표현하려고 맥주병도 녹색으로 만들었다고.


거품이 맥주의 영혼이라면

(국산맥주로 낮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멋이 난다)

개인적으로 라거를 좋아하는 이유는 탄산과 거품이다. 설마 이것도 청정한 리얼탄산은 아니겠지? 싶었는데 맞았다. 보통 맥주를 만들 때는 탄산을 주입(이산화탄소를 강탄)한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탄산을 쓰려면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테라는 자연 발생된 탄산만을 사용했다고 한다. 덕분에 탄산과 거품이 투박하지 않고 오밀조밀하다.

독일 사람들은 ‘거품을 맥주의 영혼’이라고 부른다. 그 말이 맞다면 그동안 우리가 마셨던 많은 맥주들은 영혼 없는 유체이탈이 빠른 맥주였다. 하지만 테라의 거품층은 단단하게 유지가 된다. 자식. 국산맥주를 향한 각박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유지하다니…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시기 전부터 말을 많이 했는데도 여전히 층을 유지했다.

라거에 풍부한 홉향과 쌉싸름함을 요구하는 것은 마시즘에게 국어사전을 던져주며 서울대를 가라는 것과 같다. 당분간(영원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냥 건강하고 청량하게만 자라 다오. 청량감에 있어서 테라는 균형을 잘 잡았다. 물처럼 마시는 것은 아닌데 끝이 깔끔하다. 중간에 살짝 단맛이 나며 보리 출신임을 말하지만 입안에 질척이는 게 없어 의외라는(?) 평을 날렸다. 이런 평가 때문에 많은 맥린이와 그리고 마시즘이 출시를 기다렸지.


국산맥주의 시대는 다시 돌아올까

단순히 풍미만을 잡은 라거가 아니다. 여러모로 반가운 친구를 만난 느낌이랄까? 하이트맥주만 고집하는 아빠도 떠오르고, 그 공장에서 마신 생맥주도 떠오른다. 참 많이 마셨는데, 맥스도 좋아했는데, 드라이 d는 왜 소주에 탔었을까(…)라는 추억이 떠오른다.

오래 기다린 만큼 잘 만든 맥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여전히 맥주시장에는 많은 맥주들이 치열한 경쟁을 진행 중이다. 수입맥주들의 강세 속에서 국산맥주는 다시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테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답은 마셔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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