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 사건부터 축구까지, 하이네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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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켄 얼마예요?
네, 1,600만 달러입니다”

가끔 편의점에 들어가 하이네켄을 사면 위와 같은 상상을 한다. “1,600만 달러요?” 아니. 만원이면 하이네켄 4캔이나 살 수 있는데 1,600원도 아니고 1,600만 달러?? 그러자 복면을 쓴 상대는 말한다. 아 그 하이네켄 말고 하이네켄 회장 ‘알프레드 하이네켄’의 몸값인데요?

하지만 실제로 있던 일이라는 게 함정. 1983년 네덜란드의 맥주왕 ‘알프레드 하이네켄’은 납치를 당한다. 그의 몸값은 1,600만 달러(당시 600억원)로 사상 최고의 몸값을 기록한다. 이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긴 <미스터 하이네켄>이라는 영화가 있을 정도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니 하이네켄을 만든 사람들이 하이네켄이었어?”

오늘은 이야기가 많아 아름다운 맥주, 4대째 내려오는 하이네켄 일가 이야기다.


1대 하이네켄
맥주는 곧 품질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음료에 이름을 남긴다. 지금의 ‘하이네켄’역사를 시작한 사람은 ‘제라드 하이네켄(Gerard Adriaan Heineken)’이다. 1864년, 22살의 제라드 하이네켄은 암스테르담의 ‘호이베르크(De Hooiberg)’라는 양조장을 매입하여 독일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의 라거 맥주를 만들기로 계획한다. ‘하이네켄(원래는 2대까지는 맥주 이름이 하이네켄스 HEINEKEN’S 였다)’의 탄생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지식인들과 예술가, 신사들을 위한 술’이었다. 허세가 아니라 당시 네덜란드는 값싸고 빨리 취하는 ‘진 열풍’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그는 독주보다는 맥주를 권장하면서 건강한 사회를 만드려고 한다(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해장음식이 차가운 생맥주다). 문제는 당시 네덜란드 기술로는 원하는 품질의 맥주를 만들 수 없다는 것.

(암스테르담은 맥주트럭도 멋지네요)

그는 공격적으로 시설을 투자한다. 양조장을 늘렸고, 좋은 물을 얻기 위해 파이프 시스템을 따로 만든다. 네덜란드 최초로 냉각시설을 도입했다. 무엇보다 효모 개발에 투자를 했다. 1886년 파스퇴르의 제자인 하트톡 엘리온(Hartog Elion)박사를 섭외하여 자체 효모를 개발한다. 바로 ‘하이네켄 A-이스트(Heineken A-yeast)’다. 물, 맥아, 홉, A-이스트로 이용되는 하이네켄의 포메이션을 만든다.

‘맥주는 곧 품질이다’라고 말하는 워커홀릭 제라드 하이네켄이 만든 하이네켄스는 1889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그랑프리(diplôme de GRAND PRIX)를 수상한다. 심사위원들은 검증받을 필요가 없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수준의 맥주라고 칭한다. 하이네켄 맥주의 맛은 1대에서 완성되었다 싶을 정도로 여전히 유지된다.


2대 하이네켄
뉴욕으로, 세계로!

1914년, 제라드 하이네켄의 아들 ‘헨리 피에르 하이네켄(Henry Pierre Heineken)’이 경영권을 물려받는다. 그는 아버지가 완성한 맥주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 노력을 했다. 하이네켄의 무대를 아시아와 북아메리카로 확장시킨 것이다.

1930년대 헨리 피에르 하이네켄은 인도네시아 수라비야 지역에 ‘최초의 해외 양조장’을 설립한다. 1932년에는 말레이시아에 맥주 공장을 설립하여 ‘타이거(Tiger)’를 만든다. 우리가 아는 싱가포르 대표 맥주 ‘타이거맥주’가 맞다. 하이네켄은 로컬 맥주 브랜드들을 인수하거나 합작하는 방법으로 영역을 넓힌다.

헨리 피에르 하이네켄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는 1933년이었다. 바로 미국의 금주령이 풀린 것이다. 하이네켄은 금주령이 풀리고 가장 먼저 배달된 ‘최초의 맥주’가 되었다. 미국인들은 정말 오랜만에 먹는 맥주, 그것도 품질이 좋은 하이네켄 맥주에 환호했다.

여담으로 미국인들에게 ‘병이 초록색인 맥주는 뭔가 품질이 좋을 것 같다’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도 하이네켄이다. 헨리 피에르 하이네켄은 1929년부터 보틀링 시스템에 관심이 생겨 병맥주를 생산했는데 사실 갈색과 초록색을 전략적으로 나눈 것은 아니었다. 다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갈색 유리가 부족해 초록색 유리로 만든 병을 수출한 것이다. 다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유럽의 고품질 맥주들이 초록병에 담겨있으니 그런 믿음을 가진 것이다.

2대 하이네켄은 인도네시아, 이집트, 콩고 맥주공장 등을 인수하며 하이네켄의 세계관을 확장한다. 이것이 하이네켄의 전성기냐고? 아니다. 1대와 2대가 만든 하이네켄은 3대에 맞아 전설이 된다.


3대 하이네켄
마케팅의 힘, 세기의 브랜드를 만들다

1대는 맥주를 만들고, 2대는 시장을 만들었다. 1942년, 19살인 알프레드 하이네켄(Alfred Heineken)은 회사의 홍보담당 직원으로 입사한다. 그가 관심이 있는 부분은 광고와 브랜드 마케팅이었다.

하지만 당시 하이네켄 경영진은 광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하이네켄은 광고가 없어도 잘 팔린다고 생각했다. 알프레드 하이네켄이 1948년 가정주부를 겨냥한 병맥주 광고를 만들어 진행하기 전까지는. 단순히 병맥주를 든 여성 모델을 그린 광고였지만 매출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술집에서 맥주를 마셨던 시대에서 식료품점에서 맥주를 쇼핑하는 시대를 제대로 캐치한 것이다.

(우리가 아는 하이네켄 로고는 3대때 완성되었다)

알프레드 하이네켄은 사명과 로고도 재정비를 하였다. 기존의 ‘하이네켄스(HEINEKEN’S)’를 ‘하이네켄(Heineken)’으로 줄였다. 대문자도 소문자로 바꿨고 ‘e’모양은 옆으로 기울여 특유의 마크를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초록병에 빨간색 별이라는 하이네켄의 상징을 확정한 것도 알프레드 하이네켄 때의 이야기다. 네덜란드의 라이벌 맥주회사 ‘암스텔(Amstel)’을 인수했고 ‘네덜란드의 맥주왕’이라고 불리게 된다.

(왼. 하이네켄 납치사건 당시 사진, 오른. 이를 영화화한 미스터 하이네켄)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1983년 운전기사와 함께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해 3주 동안 감금된 것이다. 그는 1600만 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몸값을 내고 풀려났다. 네덜란드 최고 부자를 납치한 이들은 몸값을 받았으나 모두 구속되었다. 이는 두고두고 회자되어 <미스터 하이네켄>이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이 납치범의 가족이 쓴 <나의 살인자에게>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풀려난 하이네켄은 이후 공식적인 행사나 언론 인터뷰 없이 살았다. 하지만 그는 2002년 숨을 거둘 때까지 하이네켄의 경영에 힘을 썼다.


4대 하이네켄
맥주를 넘어서

현재 하이네켄은 4대째에 이르렀다. 알프레드 하이네켄의 딸 ‘샤를렌 드 카발로-하이네켄(Charlene de Carvalho-Heineken)이다. 하이네켄 일가의 최초의 여성리더이기도 하고, 네덜란드 1위 부자다(궁금해서 찾아보니 세계 전체 76위, 여성 중에서는 10위다).

그녀는 47세 되던 해에 하이네켄의 지분을 상속받았다. 하지만 하이네켄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모든 카페나 펍의 메뉴판에 내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라는 것. 전대의 하이네켄 회장들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나섰다면, 4대는 전문경영인을 하이네켄 CEO로 고용한다. 그리고 뒤에서 지원을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축덕들의 맥주 하이네켄)

요즘의 하이네켄은 그렇다면 어떨까? 맥주를 넘어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축구. 2006년부터 유럽 챔피언스 리그의 공식 파트너가 되어 축구팬들에게 구애를 하고 있다. 칼스버그 로고가 새겨진 리버풀이 하이네켄 로고가 있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는 환상의 콜라보(?)를 보여준 적이 있다. 스포츠 외에도 음악, 유명 도시 관광, 과학분야까지 하이네켄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마도 카페와 펍의 메뉴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은 것이 아닌지(아니다).


주류를 파는 회사에서
술 마시지 말라는 광고를 해?

흔하게 만나는 맥주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은 기쁜 일이다. 녹색병과 빨간 별의 맥주 안에 담긴 4대의 이야기는 맥주산업의 발전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면에 달라지지 않은 점도 있다. 여전히 물과 맥아, 홉, A-이스트로 맥주를 만들고, 하이네켄 중앙 연구소에서는 모든 양조장에서 샘플을 수거해 맛을 점검한다. 1대부터 내려온 ‘고른 품질’에 대한 고집은 여전히 지키는 중인 것이다. 또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하이네켄이 바로 ‘신사들의 술’이라는 것. 하이네켄은 주류회사이지만 ‘술 마시지 말라’는 광고를 하는 곳이다. 음주운전이나 폭주 등에 대한 위험성을 전면에 내세운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하이네켄은 여전히 독하게 취하기 보다 맥주를 통해 건강한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참고문헌
  • Heineken: a history in a bottle, Tanja Lanza, Henley Business Review
  • The history of the Heineken bottle, CNBC
  • The history of beer in Korea, Time Out
  • [통신원 리포트] 네덜란드 최고의 부자 샤를렌 하이네켄 이야기, 박지연, 한국경제TV
  • 칼스버그 vs 하이네켄, 장관석,신동아
  • 백년기업 성장의 비결, 문승철, 모아북스
  • 유럽맥주여행, 백경학, 글항아리
  • 가장 세계적인 맥주’ 하이네켄, 김흥길, 경남일보
  • Heineken Annual report
  • 하이네켄 패키지 디자인 새로운 변화와 진화, 마루, DESIGNLOG
  • 하이네켄 맥주에 디자인을 입히다, 이효복, LIQUOR
  • HENIKEN 1864-1900, Van Den M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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