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즘의 술포일러]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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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에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성공한 영화의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잘 짜인 시나리오, 그림 같은 미장센, 숏의 리듬, 주제의식이나 각종 메타포?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료’다. 음료는 캐릭터를 주고, 음료는 리얼리티가 되며, 음료는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된다.

한국 영화계에 ‘마시즘(a.k.a. 20대에 영화 찍다 쫄망)’을 제외하고 이 비밀을 알아차린 감독이 탄생했다. 바로 ‘봉준호’다. <기생충>… 과연 소문만큼이나 이렇게 잘 마시는 한국영화는 오랜만이다. 그렇다면 <기생충>에서는 무엇을 마셨을까.

전지적 음료 시점의 영화 리뷰 ‘마시즘의 술포일러’. 이제 그 검은 상자를 저와 열어보시겠어요?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봉준호의 먹방 무비

그의 영화 <괴물>을 보면서 느꼈다. 이 인간… 아니 감독은 정말 먹고 마시는 것을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 괴물 둥지 속에서 학생에게 ‘하이트 맥주’타령(?)을 하게 만들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사람들은 그를 강렬한 이미지의 감독으로 생각하지만, 봉준호 이 분의 어떤 예술적 터치는 먹는 것으로 향해있다.

그의 다른 작품을 살펴보자. <설국열차>는 양갱에 관한 영화고, <옥자>는 돼지고기에 관한 영화다,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는 개고기에 관한 영화였다. 그러면 <마더>는 뭐냐고? 제목만 봐도 모르겠는가. ‘혜자’잖아. 김혜자 도시락을 띄우기 위한 준비단계였다고 확신한다.

배우와 첫 미팅할 때 영화 이야기는 안 하고 ‘마카롱 맛집’ 어쩌고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의 영화는 인간의 먹고 마시즘을 향하고 있고 <기생충>에서 절정을 이룬다.

(두 황금종려상 작품의 공통점 : 아시아 영화이자, 가족영화고, 영화 내내 뭘 겁나 먹고 마신다)

‘영화 이전에 먹을 것을 추구한다’. 그런 그가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심지어 시상식에서 ‘배고프다’라고 말했다. 마스터피스). 당장 전년도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의 내용도 ‘라무네 소다’를 마시는 가족들의 우여곡절이 아니던가(아니다).

무비 키드들아. 여러분도 칸에 진출하고 싶으면 명심해. 무언가를 꼭 먹거나 마셔야 한다. 알겠지. 무슨 담배씬, 운전씬, ‘아 꿈이었군’씬 이런 거 다 빼고 일단 먹고 마시라고!


필라이트가
삿포로가 되는 순간

(필라이트 하나로 모든 캐릭터와 배경을 설명해버린 봉테일)

<기생충> 이야기를 해보자. 일단 입이 바쁜 영화다. 상영시간 내내 대사를 쏟아내거나, 뭔가를 먹고 마신다. 심지어 기승전결을 ‘술’로 나눌 수 있을 정도다. 관객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필라이트’다. 나오자마자 다들 깨닫는다. ‘저 집 경제가 어렵구나!’.

영화는 이렇게 ‘빈민 맥주’로 필라이트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관객이입을 높인다(더 가난했다면 빵으로 술을 셀프 양조했을수도). 왜냐하면 필라이트는 5억 캔이나 팔렸거든… 영화를 보러 간 사람 중에 필라이트 안 마셔본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결국 우리는 필라이트에 가까운 사람이고, 반지하에 가까운 사람이 된다.

그러던 가정에 취업자가 생긴다. 그러니 맥주가 업그레이드(라고 쓰고 옆그레이드라고 읽는다) 된다. 맥주가 필라이트에서 삿포로 맥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는 필라이트를 마신다(취업자들에게만 삿포로를 주었다고 알았는데 아니었음).

그리고 가족은 전원 취업을 목표로 달려 나간다! 모두가 삿포로를 마실 수 있는 그 날을 위하여!


이거 정말 상징적이네…
그들이 마신 양주는 무엇일까?

(먼지 한 톨도 우리 집과 닮지 않은 박사장 저택)

결국 가족이 해낸다.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박사장(이선균)의 집에 단체로 취업을 한다. 그것도 모자라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간 틈을 타 그 집에서 양주 파티를 한다. 영화 속 가족들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고, 영화 밖 관객들에게는 가장 불안한 순간이다. 엄마 아빠 선생님 몰래 뭔가 먹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감각이다.

(이 정도 찾을 수 있었다, 패트론, 로얄 샬루트, 발렌타인, 글렌피딕)

한산도 대첩, 학익진 모양으로 깔린 양주의 면면을 둘러보자. 발렌타인 30, 로얄 샬루트 21, 글렌피딕 15, 페트론 정도였다. 필라이트가 몇 개야 싶었는데, 가족들은 이 술을 온더락(+얼음추가)도 미즈와리(+물추가)도 아닌 스트레이트로 마신다. 딸인 기정은 페트론으로 병나발을 불 정도다. 누가 뭐라 해도 돈이 다리미니까. ‘우리도 돈만 있으면 이정도는 할 수 있는 게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이 정도 술은 ‘주린이’라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름이 유명한 술이다. 기택의 가족들은 진짜 비싼 것들… 그러니까 싱글몰트니 희귀한 위스키들은 건들지 않았다. 영국 부동산 컨설팅 회사 ‘나이트 플랭크’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최고 수익률을 낸 물품이 ‘희귀 위스키(582%)’라고 한다. 맥켈란 1926 시리즈는 이미 10억이 넘고 있고, 부자들의 컬렉션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를 알았건 몰랐건 기택 가족은 선을 넘지 않는다. 진짜 부자들의 취미는 못 들어가고, 자기가 아는 수준의 부를 따라 해 보는 것이다. 필라이트만 마시던 입장에서는 엄청났겠지만, 절대 그 계층에 닿을 수 없는 나름 디테일한 설정이라고 할까?


즐겁다가 숙취를 남기는
한 편의 음주 같은 영화다

역사적으로나 음주적으로나 ‘취하는 것’은 권력이다. 취할 만큼 술을 사야 하니까. 그런데 ‘안 취하는 것’도 권력이다. 영화 속 박사장 가족은 그 많은 술이 있어도 건강즙을 마시거나, 가볍게 와인잔을 나누며 절제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허락된 것은 무엇일까. ‘못 취한다’가 아닐까. 취하고, 안 취하고를 고를 수 없는 그런 상태다. 영화도 딱 그런 생각을 하게 해 줬다.

(영국 빈민가의 진 광풍은 누구의 탓일까?)

<기생충>에서 일어난 이 난리를 누구의 탓으로 보아야 할까(분명한 것은 술탓은 아니다)를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18세기 영국 런던의 ‘진광풍(Gin Craze)’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 같다. 당시도 위스키는 부자들만 마실 수 있는 술이었는데, 값싸고 독한 ‘진’의 출연으로 영국 내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건이다.

동시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각종 구걸, 매춘, 음주, 절도 등 런던을 고담시티로 만들어버린 사건인데. 진을 소비한 계층이 일부 서민(저소득층과 빈민가에 사는)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독한 진을 마시고 깽판(?)을 부린 빈민들이 나쁜 거냐, 저렴하게 나온 술이 나쁜 거냐, 자기들만 고급술을 누린 귀족들이 나쁜 거냐…라는 의문을 남겼다랄까.

영화는 즐겁고 재미나다가 쓴맛 같은 질문을 남기고 끝나게 된다. 한차례 소동이 일어나버린 술자리 같다. 빛을 보고자 했던 사람은 반지하가 아니라 진짜 지하에 기생하게 되었다. 아들 기우는 근본적인 대책을 찾았다며 편지를 쓴다. 대책은 돈을 벌어 그 저택을 사는 것이다(감독 피셜로 500년은 걸릴 것이라고).

알콜홀릭의 금주선언 같은 마지막 대사. 이를 듣고 나온 관객들은 이 허전함을 어떤 술로 채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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