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만들어낸 위대한 실수들 우리에게 맥주를 안겨준 역사 속 세 가지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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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가장 즐거운 일을 하나 꼽으라면 맥주를 마음껏 마실수 있는 것이다. 퇴근길 편의점에 들려 4캔에 만원 하는 수입맥주를 고르는 순간은 상상만 해도 설렌다. 만약 맥주가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지금 같은 맥주를 못 마실 뻔했다. 맥주는 발명된 것이 아닌 실수 속에서 발견된 음료수이기 때문이다. 오늘 마시즘은 인류를 위기에서 구한 위대한 세 가지 실수를 말해본다.

최초의 맥주를 만든 사람은 메소포타미아의 제빵사였다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농경사회가 막 정착한 이곳은 보리와 밀이 풍부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곡식을 발효해서 빵을 만들기를 즐겨했다. 하지만 가끔 빵이 되지 못하고 액체로만 남아버린 실패작들이 있었다. 아까운 마음에 마셔본 메소포타미아인. 괜히 기분이 좋다. 이것이 바로 맥주의 탄생이다.

일부 고고학자는 맥주를 양조하려다 실패한 것이 빵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일 뿐. 당시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빵과 맥주는 똑같은 양식이었다. 빵은 고체상태의 맥주였고, 맥주는 흐르는 빵이었다. 먹으면 다 똑같아.

최초의 맥주는 지금과 달랐다. 커다란 독 안에 담긴 맥주의 위에는 곡식 찌꺼기가 떠있고, 바닥에는 쓴맛이 나는 잔여물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독에 둘러앉아 빨대를 이용해 맥주를 마셨다. 이 행위는 ‘이 맥주 안에는 독이 없고, 나는 너를 신뢰해서 함께 마신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냥 마시는 척하면 속일 수 있는 건데 바보들.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맥주는 가까운 이집트에도 퍼졌다. 이집트에서는 월급과 일당을 맥주로 주었다. 위대한 피라미드 공사를 하고 퇴근길 맥주 한 잔은 이집트인의 유일한 낙이었을 것이다.

수도원 맥주는 맛이 변질되어 금식 대상에서 벗어났다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맥주 장인은 바로 수도사들이었다. 당시의 수도사들은 직접 노동을 해서 수도원을 운영해야 했다. 그들은 맥주를 양조하여 팔았다. 수도사들은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가졌기에 맥주 양조에 대한 지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수도사들에게 위기가 있었다. 바로 사순절이었다. 사순절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부활절 전까지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한다. 이때는 기도와 절제 그리고 금식을 수행한다. 중세 수도사들에게 사순절은 유격훈련과도 같은 혹독함 그 자체였다.

16세기 독일 바이에른 지역의 파울라너의 수도사들은 굶주림 속에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금식기간에 액체(라고 말하고 맥주를 손에 든다)를 마시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곧 그들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맥주를 양조한다. 이 맥주는 사순절 기간 육체와 영혼을 정화시키는 맛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교황에게 맥주를 보내기로 한다. 독일에서 로마까지 걸어가는 동안 맥주가 상해버린다는 사실은 깜빡 잊은 체.

육체와 영혼을 정화시켜 준다고 소문난 맥주를 마셔본 교황은 어땠을까? 교황은 이렇게 맛없는 맥주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맥주라면 사순절 동안 마셔도 별 문제가 생길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이 맥주의 해괴한 맛에서 절제의 미덕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렇게 교황은 맥주를 사순절 기간에 마시는 것을 허락한다.

의문의 성공에 수도사들은 행복했다. 비록 안주는 함께 할 수 없었지만, 그들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맥주를 만든다. 각종 과일과 꽃을 넣어보기도 하고, 맥주에 홉을 넣는 방식을 개발하기도 한다. 수도원 맥주는 오늘날 유럽 맥주의 베이스가 되었다.

체코 시민은 맥주가 너무 맛없어서 혁명을 일으켰다

체코는 1인당 맥주 소비량이 세계 1위인 나라다. 체코 남자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딱 세 가지다. 여자, 맥주, 신. 안타깝게도 신은 맥주를 사랑하는 나라 체코에게 맥주를 만드는 능력을 주진 못했다. 맛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영국이나 독일의 맥주를 수입해야 했다.

1838년 체코의 플젠이라는 도시에서는 맥주가 너무 맛이 없는 나머지 시민들이 나서서 36배럴(약 13,000병)의 맥주를 바닥에 쏟아버렸다.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역사는 이를 골든 혁명이라고 기억한다.

플젠의 시민들은 맛있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의 브루어리를 만들었다. 영국과 유럽을 다니며 선진 양조기술을 배웠고, 독일에서 조셉 그롤이라는 브루어리 마스터를 초빙하기에 이른다.

1842년 11월 11일 드디어 플젠의 첫 맥주가 베일을 벗는 날. 맥주를 따르자 시민들은 경악을 했다. 당시의 맥주는 모두 어두운 색이었다. 그런데 플젠의 맥주는 너무나도 맑은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또 13,000병을 바닥에 부어야 하나 생각하던 차에 맥주를 마신 사람들이 하나, 둘 탄성을 터트렸다.

플젠의 맥주는 이전까지 마셔본 적이 없는 시원하고, 강렬한 맛이었다. 특히나 황금빛의 맥주 색깔은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플젠의 맥주는 독일과 프랑스, 바다 건너 미국에까지 진출하였다. 세계맥주 스타일의 90%를 차지한다. 우리는 이 맥주를 ‘필스너 우르켈’이라고 부른다.

황제부터 백성까지 우리는 공평하게 취할 자격이 있다

문명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맥주는 언제나 함께 해왔다. 상류층만 즐길 수 있었던 다른 술과 달리 맥주는 황제의 술이었고, 백성들의 술이었다. 혁명가의 술이기도 했으며, 패배자를 위로하는 술이기도 하다. 맥주는 실수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더욱 너그럽다. 남은 맥주를 모두 마시며 생각했다. 이미 우리의 삶은 맥주 그 자체라서 맥주가 사라지는 날은 누군가의 실수로 문명이란 것이 없어질 때가 아닐까?

* 참고도서 : 알코올의 역사(로드 필립스), 역사 한 잔 하실까요(톰 스탠티지), 아침식사의 문화사(헤더 안튼 앤더슨), 맥주 맛도 모르면서(안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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