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참을 수 없는 유혹의 역사 신의 음료가 인간에게 닿기까지

첫 와인은 예술영화를 보듯이 목에 넘어갔다. 문제는 내가 마블, DC 등 캐주얼한 상업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와인이 가진 복잡 미묘한 맛을 그냥 “맛있다. 맛있다.”란 말로 퉁치며 마셨다. 옛날 사람들도 와인을 어려워하며 마셨을까?

서양의 역사는 곧 와인의 역사다. 역사를 주물럭 거렸던 위인들은 모두 와인을 마셨다. 어려운 것은 지금보다 더했고, 비싸기로는 요즘 못지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와인이 주는 행복감에 감탄했다. 와인은 신이 내려준 음료의 왕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마시즘은 신의 음료수가 인간에 닿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아본다.

1. 신이 만든 와인, 동물에게 먼저 내리다

와인은 신이 내려준 음료다. 과일은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와인이 되기 때문이다. 과일의 열매가 익어 껍질이 갈라지면, 야생의 이스트가 과일에 붙는다. 이스트들은 과일의 당분을 먹으며 3, 4% 정도의 알콜을 만들어 낸다. 외적인 자극 없이도 스스로 발효하는 자연의 양조과정은 신비롭다.

포도가 인간보다 오래되었다. 포도는 약 1억 5천 – 2억 년 전에 생겼다. 때문에 와인을 최초로 마신 생물은 동물이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가끔 술에 취한 포유동물과 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과일을 주식으로 삼았던 초창기의 인류 역시 가끔 이런 과일을 먹어봤겠지. 새도 나비도 동물도 인간도 모두가 비틀비틀 술에 취한 모습을 상상해본다. 정말 평화로운 위아더 월드다.

2. 노아, 최초의 와인 생산자가 되다

우연의 산물의 와인이 아닌 직접 와인을 양조한 사람은 누구일까? 여러 가지 기록이 있지만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성경에 적혀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노아(Noah)다. 40일간의 대홍수로 세상이 포맷되고, 방주를 탄 노아는 현재의 터키 동부지역인 아라라트 산(Mount Ararat)에 정착하여 포도농사를 짓는다. 성경 속의 노아는 이 포도를 가지고 와인을 만들어 마셨다.

고고학자들 역시 아라라트 산 근방(터키 및 중동지역)이 최초의 와인 탄생지라고 추측하고 있다. 기원전 5000-6000년 전 발견된 토기에서 포도즙과 송진 등이 검출되어 이들이 와인을 빚어 마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아는 음료의 역사상 또 한 가지 기록을 세웠다. 바로 와인을 마시고 주사(?)를 부렸다는 것이다. 와인을 마신 노아는 벌거벗고 잠에 들었는데 그것을 발견한 아들들은 노아의 몸에 옷을 덮어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인류 최초로 기록된 주사다. 여러모로 성경은 위대하다.

3. 이집트, 파라오의 특별한 해외직구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포도재배가 어려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강을 타고 와인을 해외에서 와인을 직구(?)했다.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을 타고 내려온 와인에는 보트 가격까지 포함이 되었다. 때문에 와인은 왕과 일부 귀족들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술이었다.

비싼 술 앞에서는 마시는 방법도 달라진다. 메소포타미아인과 이집트인들은 대중음료인 맥주를 마실 때 여러 사람이 독에 둘러앉아 빨대로 맥주를 나눠 마셨다. 하지만 와인은 금으로 만들어진 잔에서 혼자 즐겼다. 와인을 마신다는 행위는 신뢰를 나누는 것이 아닌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스케일이 달랐다. 그는 대량의 와인을 피라미드에 묻었다. 맥주와 달리 유통기한이 없는 와인은 저승에서도 마실 수 있는 음료였기 때문이다. 이집트 초창기 집권자였던 스콜피온 1세(Scorpion 1)는 비싸게 수입한 와인 700단지와 함께 묻혔다. 이걸 나르는 사람들은 입맛을 정말 다셨겠지.

와인이라는 이국적인 음료에 매료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하지만 바다 건너 그리스에서는 노예들도 마시는 것이 와인이었다. 700단지를 묻었다고? 그리스에서는 노예들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촌놈들.

4. 그리스, 심포지엄이라고 쓰고 회식이라 말한다

고대 그리스인은 맥주를 마시지 않은 도도한 민족이다. 지중해의 토양과 기후는 포도가 자라기에 안성맞춤이라 그들은 와인을 풍족하게 생산할 수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이집트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그리스인에게 맥주는 야만이었고, 와인은 문명의 상징이었다.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제도는 심포지엄(Symposium)이다. 요즘에는 컨퍼런스나 미팅의 의미로 쓰이지만 그리스어로 심포지엄은 ‘함께 마시다(Drinking together)’라는 뜻이다. 그리스인은 심포지엄에서 밤새도록 와인을 마시고 정치와 예술을 논했다. 와인을 물에 타서 마시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가끔은 너무 취해서 난장판을 벌였다고.

플라톤(Platon)은 와인을 마시는 행위는 상대의 성격을 시험할 수 있는 일이며, 동시에 자신의 열정, 사랑, 자부심, 무지와 탐욕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많이 마시되, 취하진 마라’라는 문구는 심포지엄에 참가하는 그리스인의 자세였다는데. 수천 년 뒤 한국의 직장에서도 비슷한 논리로 회식이란 심포지엄이 펼쳐진다는 것을 플라톤은 알고 있을까?

5. 로마, 안녕? 나는 귀족이고 내가 마시는 것은 특별한 와인이야

기원전 2세기 지중해를 점령한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세련된 문화를 닮고 싶어 했다. 그들은 그리스 문학을 공부했고, 그리스 건축양식을 이어받았다. 술 역시 그리스식이 최고였다. 그들에게 와인이란 로마의 세련됨을 나타내는 음료수였다. 당시 마르쿠스 카토(Marcus Porcius Cato)는 “우리가 그들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정복당한 자들이 우리를 정복하였다”라고 말한다.

로마시대는 와인 양조가 발달하여 계급별로 즐길 수 있는 와인이 확연하게 구분이 되었다. 기원전 87년, 로마의 정치가였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sus Antonius)는 이러한 와인계급론에 유명을 달리한 인물이었다.

당시 로마는 가이우스 마리우스(Gaius Marius)가 내전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그는 정적이었던 술라(Sulla)와 그의 지지자들을 학살했다. 술라의 편이었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자신보다 낮은 계층의 조력자 집에 몸을 숨겼다.

그를 보호해주던 집주인은 하인을 시켜 와인을 사 오게 했다. 유명한 귀족 나으리를 만족시키려면 평소 주문하는 것보다 더 훌륭하고, 값비싼 와인이 필요했다. 한 노예가 이곳저곳 비싼 와인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은 마리우스의 귀에 들어갔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결국 와인 한 잔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마셨던 와인은 무었을까? 아마 이탈리아 남부에서 재배된 팔레르니안(Falernian)이 었을 것이다. 화이트 와인이지만 최고 품질의 팔레르니안은 황금빛으로 변하기도 해서 ‘신의 와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런 와인을 찾아다녀야 했다니. 노예의 어리석은 노고에 묵념을.

역사 속 인물들은 왜 와인에 감탄하였나?

맥주와 달리 와인은 포도만 잘 자라면 만들 수 있는 비교적 간편한 술이다. 하지만 와인을 만드는 포도 속에는 자연의 변화주기와 부활을 관찰할 수 있다. 봄에 싹이 트고, 여름과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겨울에 죽은 듯이 보였다가 다시 봄에 부활한다. 이 모습은 고대인이 보기에 영적인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

현대에도 와인은 우리를 일상과 다른 특별한 세계로 초대해준다. 비록 비싼 와인, 이름난 빈티지는 아니더라도 오늘 하루를 특별하게 마무리하는 데에 와인만 한 것이 없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와인을 사고 싶은 가격대와 품종 정도만 생각하면 마트에서 가장 좋은 와인을 추천해준다. 가끔은 이런 예술적인 음료가 우리의 삶을 감탄하게 만들어주니까.

참고도서 : 알코올의 역사(로드 필립스), 와인의 역사(로드 필립스), 역사 한 잔 하실까요(톰 스탠디지) 그리고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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