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론티, 홍차의 꿈을 꾸는 인도양의 작은 섬 실론티는 어떻게 홍차와 동의어가 되었는가

“너는 바다를 꿈꾸고, 나는 너를 꿈꾼다”

맛있는 음료수만큼이나 멋진 광고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내게는 실론티의 광고가 그러하다. 노을빛 가득한 하늘 아래 차를 실은 범선이 인도양을 가른다. 이륵 그윽하게 바라보는 남자가 실론티를 마신다. 너무나도 이국적인 풍경에 저 음료수는 꼭 마셔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실론티 광고에서 기억 남는 것은 한 줄의 카피다. 바로 ‘홍차의 꿈’. 당시에는 그냥 멋진 말 대잔치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궁금하다. 왜 실론티를 홍차의 꿈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오늘 마시즘은 실론(Ceylon)이라는 작은 섬나라에 홍차의 꿈을 심은 두 남자의 이야기를 알아본다.

“첫 번째 남자, 사람들은 그를 실론티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1852년 16살에 스코틀랜드를 떠나 실론의 땅을 밟은 젊은이다. 당시의 실론(지금의 스리랑카)은 인도양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작은 섬나라였다.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은 실론에서는 커피를 생산하는 것이 주요 산업이었다. 제임스 테일러 역시 커피농장의 일을 하기 위해 실론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1860년 실론 전역에 커피녹병이 돈다. 커피녹병은 약 25만 에이커의 커피농장을 파괴했다. 쉽게 말해 1 에이커는 1,224평이다. 더욱 쉽게 말하자면 실론섬 전역의 커피농장이 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망해가는 커피농장의 주변에 여러 가지 나무를 심으며 생각했다. “커피가 아니라면 차를 생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임스 테일러가 차 나무를 심은 최초의 실론티농장 NO.7, 출처 : Explore Sri Lanka)

그동안 차 나무를 기르고, 차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것은 중국뿐이었다. 이러한 차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영국은 중국의 차 기술을 빼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결국 영국은 인도의 아쌈 지방에서 차 나무를 기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묘목이 1867년 제임스 테일러의 손에 들어왔다. 그는 NO.7이라 불리는 밭에 묘목을 심었다. 최초의 실론티가 탄생한 순간이다.

실론에서 만든 차는 다른 홍차보다 향이 강하고, 산뜻한 맛이 강했다. 적은 양이었지만 영국 현지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고 실론티 연구에 평생을 매진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다른 농장주에게 나누어 주었다. 제임스 테일러는 동료들에게 차의 성자, 실론티의 아버지로 불렸다.

19 에이커의 NO.7은 8년 뒤에 1,000 에이커로 늘어난다. 20년 후에는 30만 에이커로, 1930년에는 무려 50만 에이커로 차 밭이 늘어난다. 한 청년이 오두막에서 시작한 작업은 작은 섬나라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홍차의 나라 영국에서는 제임스 테일러의 업적을 이렇게 회고한다.

“영국이 지금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나라가 된 것은 커피녹병 덕분이다.”

“두 번째 남자, 실론을 홍차의 동의어로 만들다”

그의 이름은 토마스 립톤(Thomas Lipton). 우리가 립톤 하면 떠오르는 그 회사를 창립한 사람이다. 그는 제임스 테일러와 같은 스코틀랜드 사람이다. 하지만 립톤은 제임스 테일러와 같은 식물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오래전 제임스 테일러가 완성한 실론티에 한 가지 문구를 더했다.

“다원에서 차 주전자로(Direct from the tea gardens to the tea pot)”

당시의 홍차는 유통과정이 길었다. 그 사이에 중간상인들 역시 가득해 가격은 가격대로 오르고, 이물질을 섞어 품질은 자꾸 떨어졌다. 립톤은 실론에서 생산돼 홍차를 직접 전 세계 사람들의 차 주전자로 배달했다. 때문에 실론티는 다른 홍차보다 훨씬 저렴했다. 실론티는 곧 귀족부터 노동자까지 즐기는 대중적인 음료수가 되었다.

립톤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룰 줄 아는 남자였다. 그는 홍차에 덧씌워진 중국의 이미지를 지우기 시작했다. 그는 실론티를 광고하며 열대의 무성한 숲에서 찻잎을 따는 여인의 모습을 광고에 적극 차용했다. 대중들은 더 이상 홍차를 떠올릴 때 중국이 아닌 실론을 떠올렸다. 제임스 테일러의 적극적인 광고 덕분에 한 세기 동안 홍차와 실론티는 동의어로 사용된다.

“홍차의 꿈, 인도양의 눈물을 웃음 짓게 하다”

한 명은 작은 섬나라에 차 나무를 심었고, 다른 한 명은 훌륭한 차를 전 세계에 알렸다. 제임스 테일러가 실론에 차 나무를 심은지 15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내전과 식민통치 등으로 고통받던 실론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홍차를 수출하는 국가가 되었다. 우리가 마시는 작은 음료를 기억하는 이유는 인도양의 눈물을 웃음 짓게 만든 홍차의 꿈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 참고 : <차의 세계사, 베아트리스 호헤네거>, <Explore Sri La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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