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특집] 술친구로 보는 세계리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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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군사력과 경제력? 아니다 주량이다”

한 잔의 술은 사람과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것은 친구나 연인, 동료 등 상관없이 유효한 사실이다. 심지어 다른 나라의 리더가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비록 하는 말도, 아는 것도 다르지만 술 한 잔을 주고받는 것은 같은 심정일 테니까.

그렇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술(음주)이다. 어디 청문회를 당할 소리냐고? 아니다. 정치도 술도 뭐든지 ‘적당함’을 찾는 게임이 아니던가(때문에 술 때문에 실수를 했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뉴스에서 정상회담에 관해 보도가 나올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어떤 술을 마실까? 아니 어떤 술친구일까?

오늘 마시즘은 술친구 입장에서 보는 정상회담을 돌아본다.


맛집 네비게이터 스타일
하벨 X 클린턴

첫 만남에서 가장 고민되는 것은 ‘어디 가서 뭐 먹지?’다. 이럴 때는 골목골목을 훤히 꿰고 있는 스타일의 친구가 좋다. 우리는 졸졸졸 따라가서 시켜주는 것을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체코의 초대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은 맥주 외교를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프라하(체고의 수도)에 정상들이 오면 자신의 단골 맥주집 우 즐라테호 티그라(U Zlatého Tygra, 황금 호랑이)에 초대해 필스너 우르켈을 마셨다. 1994년에 체코를 방문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 도 이곳에 와서 맥주를 마셨다.

(하벨의 맥주로드에 탑승한 클린턴 ⓒuzlatehotygra.cz)

갈 곳도 정해주고 메뉴도 시키는 ‘맥주 잘 아는 형님’ 하벨은 완벽한 술친구일까? 그는 클린턴에게 “맥주에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이 담겨 있다”라고 말한다. 이미 벨벳혁명을 일으키기 전부터 이 맥주집에 왔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본인이 과거에 공산당 감시를 피해 맥주 양조장에서 일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는 대통령 이전에 작가였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문과가 술을 만나면 귀로 안주를 마실 준비를 해야 하니까.

하지만 클린턴은 대학생 때부터 하벨을 존경했기 때문에 즐거웠을 듯. 하지만 3잔 마시고 다음 날 숙취로 아침 조깅을 못했다는 것을 보면 클린턴 역시 마시즘의 맞수가 될 수 없다(마시즘은 안 마셔도 아침 조깅을 못한다).


진품명품 스타일
저우언라이 X 닉슨

생각해보니 술친구로는 ‘물주’가 최고다. 맛있는 술집은 검색해서 찾아갈 수 있지만, 비싼 술은 도저히 살 수 없잖아? 이미 마시즘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술> 리스트를 줄줄 꿰고 다닐 정도였다고.

이럴 때 돌아보고 싶은 정상회담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로 대통령직을 바이 바이 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20년간 닫혀있는 중국의 문을 연 업적은 알아줘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덕분에 ‘마오타이 주’가 전 세계인들의 관심에 오르게 되었으니까.

닉슨이 마오쩌뚱을 만난다(당시 건강이 좋지 않아 많은 부분은 총리인 저우언라이와 함께 했다). 중국은 요리왕 비룡의 나라가 아니던가. 하나 나름 미국인들의 취향에 맞춰 햄이나 새우요리를 추가해서 자료를 찾은 나에게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하이라이트가 남았다. 바로 중국의 고량주 ‘마오타이 주’다.

(이거 마시면 나랑…)

미리 중국에 파견된 보좌관들은 ‘마오타이주’를 마시고 독한 맛에 대통령이 이걸 마시지 말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마시는 척만 하라고). 함께 회담에 파견된 ‘타임’지의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순수한 가솔린’을 마시는 것 같았다고. 하지만 닉슨은 저우언라이가 건배 제안한 마오타이주를 마신다.

좋겠다(마오타이주는 대부분이 가짜일 정도로 귀하고 비싸다).


밤샘 주당 스타일
처칠 X 스탈린 X 루즈벨트

동네에서 술 좀 마신다는 사람들이 모이면 피곤하다. 왠지 나도 동네에서 술 잘 마시기로 유명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결국 끝을 보고야 만다. 우리야 지갑이 비면 그만이지만, 밤샘 술자리로 세계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1943년,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가 예상된다. 그러자 연합군의 ‘빅3(영국, 미국, 소련)’의 정상들은 회동을 하며 국제정세를 논의하기 시작한다. 물론 세 사람 모두 국가대표 술고래였기 때문에 음주가 빠질 수 없었다.

(술친구 삼대장 포스… 하지만 다들 나이가 있어서 건강이 좋지 못했다)

‘윈스턴 처칠’이 노벨 문학상을 탔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엄청 술을 잘 마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다(본인 이름을 딴 샴페인도 있으니). 그는 “나는 술이 나에게서 가져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술로부터 얻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보드카의 본고장 소련(러시아)의 ‘이오시프 스탈린’도 말할 것 없다. 그는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12번도 넘는 건배를 했다고 한다. 물론 혹자는 보드카에 물을 타는 것을 봤다거나, 도수가 낮은 와인으로 바꿨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만.

미국에서 전무후무하게 4번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즈벨트(그의 사후 3선 금지법이 나왔다)’도 빠지면 섭섭하다. 그는 매일 같이 마티니를 마셨다고 한다. 심지어 처칠, 스탈린과 정상회담에서 그가 직접 만든 마티니를 선보였다고. 물론 맛있냐고 물으면 별로였다는 평이 있으니. 참으로 거대하고 위험하고 쪼잔한(?) 회담자리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마시면 위험한 스타일
보리스 옐친 X 레이놀즈

앞선 사람들은 그래도 ‘주변에 한 명쯤 있을 법한(없으면 당신)’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위험하다. 세계정상의 주당을 뽑을 때 항상 거론되는 인물. 러시아의 대통령 ‘보리스 옐친’이다. <보드카의 제국, 어메이징 러시아>에서도 분량 안에 그의 음주력을 담을 수가 없었으니까.

음주를 제외한다면 그는 러시아의 민주화에 큰 획을 그었다. 1991년 소련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쿠데타군의 탱크에 올라서 연설(이라고 쓰고 사자후라 읽는다)만으로 군사들의 마음을 돌리게 한 인물이다. 결국 소련은 붕괴되고 그는 대통령에 오른다. 축배를 들자!… 그리고 그 축배가 많은 것을 망친다.

(퓰리쳐상을 탄 사진, 걸그룹 센터를 노릴 정도로(?) 유쾌한 이미지였다고)

그의 음주력은 ‘스탈린’을 가뿐히 넘어선다. 모닝 보드카로 유명한 그는 해외에 나가서도 독하게 술을 마셨다. 주사가 자는 것이었다면 이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1994년에는 독일에 국빈 방문하여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봉을 빼앗아 지휘했고, 1995년에는 미국 백악관에서 술을 마시고 너무 취해서 잠옷 차림으로 택시를 잡으려다가 경호원에게 잡힌 적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유명한 것은 1994년에 아일랜드에서 정상회담을 할 때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보드카를 너무 많이 마셔서 움직일 수 없었다. 공항 밖에는 ‘알버트 레이놀즈’ 총리 부부와 고위관리, 군 의장대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함정. 끝내 보리스 옐친은 나올 수가 없어서 러시아와 아일랜드의 관계는 악화되었다고 한다.

약간 술이 사연을 부르고, 사연이 안주가 되어 술을 또 부르는 타입. 듣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지만 나의 친구라면, 내 나라라면(끔찍).


술은 말보다 메시지가 강하다

(영국왕이 핫도그 먹는 게 힘들까, 마시즘이 마오타이주를 마시는게 힘들까)

1939년 미국을 방문한 영국 국왕이 핫도그를 먹자 뉴욕타임즈 1면을 장식한 일이 있다(영국 국왕, 핫도그를 맛보다. 맥주까지 곁들여 두 개째). 이는 단순히 영국 국왕의 먹방이 아니다. 미국 국민음식을 영국 왕족이 먹으면서 도도한 이미지를 깨트리는 정치적 메시지인 것이다. 술 역시 그런 측면에서는 좋은 기능을 한다. 가까이에 있는 상대와는 친분을 멀리서 지켜보는 대중에게는 호감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아직 어렵지만) 술자리에서는 친구, 동료, 세계정상 까지도 평등한 친구가 된다. 간단한 음주에 지식과 계급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자리에서 우리가 나눌 대화는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번외 :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술을 마실까.

북미정상회담이 이슈다. 지난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 김 버거’라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 햄버거와 김이다. 혹은 위스키와 소주를 사용한 칵테일 ‘트럼프(럼주)’와 ‘김(소주)’가 있었는데. 본인들이 마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트럼프는 술 안 마셔서.

  • 참고문헌 
  • 김원곤, 세계 지도자와 술, 인물과사상사, 2013
  • 차이쯔 창, 정치인의 식탁, 애플북스, 2017
  • 미카 리싸넨&유하 타흐바나이넨, 그때 맥주가 있었다, 니케북스, 2017
  • 백경학, 양조장 일꾼 하벨, 체코 ‘벨벳혁명’ 이끌어 대통령 됐다, 중앙선데이, 2018.8.16
  • 한경닷컴 뉴스룸, ‘트럼프-김 버거’ 메뉴 등장…역사적 회담에 싱가포르도 흥분, 한국경제, 20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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