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당 밀크티의 끝을 잡고

0
806 views

 

인파가 가득한 힙한 거리를 홀로 걷는다. 누군가를 만나지도, 커피를 테이크아웃하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편의점에 나온 신상 음료뿐이다. 길게 줄을 서서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 음료덕후는 외친다. 그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신상털이 마시즘이다. 블루보틀 가는 건가요? 혹시 타이거슈가?

아니요 편의점 가는데요.


힙하진 않지만
흑당 밀크티는 먹고 싶어

지나서 하는 이야기지만, 올 상반기 음료는 ‘흑당’이라고 볼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타피오카 펄이 들어있고, 흑당 시럽과 우유가 꽃등심처럼 마블링된 ‘대만 흑당 버블티’. 언젠가 꼭 다뤄야지 마음을 먹었지만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그것은 힙스터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멋쟁이가 아니면 저기에 줄을 설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던 중 독자 제보가 들어왔다. 모카라떼, 민트라떼, 민트초코(…) 등 라인업을 늘리는 ‘덴마크 우유’에서 ‘블랙슈가 밀크티’가 나왔다는 것이다. 드디어 나도 흑당을 만나러 간다. 힙스터들이 줄 서서 인스타 라이브를 중계하는 동안, 마시즘은 2+1을 사서 한 개는 개봉해서 마셔버렸다. 역시 국밥… 아니 편의점이 최고야!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넌 국적이 뭐니?

(맨날 팩에 그림을 두더니, 이번에는 카페메뉴를 올려놨네)

너무 설렌 나머지 신상을 털기 전에 마셔버렸다. 생각해보니 이 녀석 성은 덴마크인데… 우유는 한국에서 만들었고, 대만 사탕수수 당밀을 넣었잖아. 심지어 뒤편에 홍차는 스리랑카에서 왔다고! 꽤나 다국적인 이 녀석 앞에서 토종 한국인인 마시즘은 족보를 따져보았다. 어디 덴씨냐!

시간을 돌려보자. 1985년, 덴마크 우유는 원래 전라북도와 덴마크의 합작으로 만든 낙농업 브랜드라고 한다. 한국의 낙농업 발전을 위해 덴마크의 낙농기술을 받아서 만들었(고 그것을 동원 F&B가 인수했)다고한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덴마크식 교육을 받고 살았다는 것이지.


데자와보다 강하다
스윗연유 밀크티

(마시즘 밀크티 판독기는 갓자와다)

먼저 스윗연유 밀크티다. 이 녀석의 자랑은 우바 홍차를 넣었다는 것이다. 우바 홍차는 다즐링, 데자와(…)와 함께 세계의 3대 홍차로 불리는 녀석이다(아니다 스리랑카의 우바, 인도의 다즐링, 중국의 기문 홍차다). 차를 많이 마셔보지는 못했지만 전에 마신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맛이 세서 놀랐던 일이 있다. 우유만 넣었으면 되는 일이었는데. 이래서 차알못은 서럽다.

비록 차에서는 업력은 짧지만, 10대 후반부터 꾸준히 데자와를 마셔왔다. 나는 로오얄 밀크티 데자와를 가지고 이 녀석의 맛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스윗연유 밀크티는 데자와에 비하면 씁쓸하면서 달콤한 맛이나 풀향이 가득한 편이다. 큰 기대를 안 하고 마셨는데 조금 놀라운 정도?

밀크티가 아직 어려운 사람들은 맑은 데자와를 마시면 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하지만 직접 만들기는 귀찮은) 사람들에게는 이쪽이 더욱 맞을 수 있겠다.


밀크티의 외모지상주의 타도
블랙슈가 밀크티

(…? 뭔가 내용물이 너무 하얀데)

문제가 생겼다. 아니 우유갑이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투명한 유리잔에 블랙슈가 밀크티를 따르니 희멀건 밀크티만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기대했던 모습은 이 모습이 아닌데. 검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져 호랑이 무늬를 내는 흑당 밀크티를 생각했는데. 호피무늬가 아니라도 얼룩말이나 점박이 정도는 만들 수 있었잖아!

(…라고 하기에는 다른 제품도 페이크였다)

때문에 편의점에서 다른 흑당 밀크티 음료를 구매해보았다. 겉 표면에 있는 저 무늬는 프린터로 인쇄된 유사 흑당 밀크티 무늬였다. 또 다른 컵커피는 반투명한 플라스틱으로 검은색 흑당 시럽 무늬만 흉내 내놓았다. 하마터면 마시즘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정품족 사이에 낀 가품족이 될 뻔했다고!

나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애초에 유통과정이 많은 이 음료에서 저런 무늬가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무늬고 뭐고 마시고 맛있으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원효대사의 자손으로서(그는 스님이다) 마시즘은 눈 감고 마시기를 시전 했다. 우바홍차의 그윽한 맛과 사탕수수의 단 맛, 연유가 콜라보해서 떨어진 당을 급속 충전해주고 있었다. 펄을 넣어서 마시고 싶을 정도로 카페에서 나온 흑당 밀크티의 맛을 잘 구현했다.


흑당의 끝에서 만난 깨달음은

덴마크 블랙슈가 밀크티는 깨달음을 주었다. 속세에 휘말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간다고 말해놓고서 속으로는 편의점 밀크티에서 흑당 무늬가 나오길 기대했던, 힙하고 싶었던 나 자신의 욕망. 하지만 곧 음료는 곧 맛으로 구분이 된다는 아주 간단하지만 지키기 힘든 사실을 말이다. 음료계의 성인군자를 꿈꾸는 마시즘. 의뢰받은 음료들을 편견 없이 마시기 위해 오늘도 편의점으로 향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