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나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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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준은
그 나라 맥주가 얼마나 맛있는가다”

친구와 ‘자신이 마셔본 가장 기억에 남는 맥주’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칭따오 양조장을 견학하고 마시는 따끈한 생맥주에 대한 찬사부터 시작하여 체코에서 마셔본 맥주의 참맛, 한 입 마셔보고 너무 써서 참회를 했다는 수도원 맥주, 식초라고 부르는 게 더 좋았을 사워맥주까지. 이야기는 끝을 모르고 불타올랐다.

가만히 듣던 한 친구는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나는… 맥주에 얼음을 넣는 곳을 다녀왔어.”

자리는 숙연해졌다. 잘 마시고 있는 생맥주 위에 갑자기 얼음을 동동 띄워버린다고? 이것은 맥덕들에게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결혼을 반대했다가 자식이 눈에 흙을 뿌리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다. 그건 맥주를 죽이는 일이야! 차라리 사약을 넣어주지 그랬어(?).

“근데… 맛있어……”

오늘은 맥주에 얼음을 띄운다는 그 나라. 베트남의 맥주에 대한 이야기다.


베트남 맥주의
역사를 알아보자

(맥주가 당기는 안주가 제대로다)

베트남 맥주의 역사는 1890년대 프랑스인들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베트남을 식민지 삼았던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와인’도 아니고 ‘맥주’였다. 동남아 푹푹 찌는 날씨에는 시원하고 청량한 맥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독일 원료와 공법을 이용해 맥주 양조장을 건설한다. 하지만 당시는 베트남 사람들이 아닌 오직 자신들을 위한 맥주였다. 베트남 독립전쟁(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신들의 땅에 와서 맥주를 마셨던 프랑스인들이 떠났다. 맥주 독립 만세! …를 외치기에는 프랑스인들이 공장 설비와 중요 기술을 훼손시키고 사라진 것이 함정. 결국 베트남은 체코에서 맥주 기술자를 초빙해 그들만의 맥주를 만든다. 그동안 맥주가 아닌 다른 술을 마셨던 베트남 사람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아. 이 날씨에는 맥주가 답이었구나.

베트남은 현재 주류 소비의 90% 이상을 맥주가 차지한다. 맥주 소비량 역시 연간 5% 남짓 상승하여, 1인당 40l의 맥주를 마시는 아시아에서 3번째로 큰 맥덕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왜 맥주에
‘얼음’을 넣은 거죠?

친구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베트남에서는 오후 4시 정도가 되면 골목골목마다 목욕탕 의자(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맥주를 마신다. 친구 또한 현지 분위기를 즐기려고 자리를 잡아서 맥주를 한 잔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친절한 종업원이 그에게 다가와 맥주잔에 얼음을 부어(?) 버렸다.

(이렇게)

이것은 베트남만의 얼음 생맥주 문화 ‘비아 허이(Bia Hoi)’다. 생맥주라는 뜻이지만 우리가 알던 생맥주와는 맛이나 문화, 그리고 얼음이 다르다. 비아 허이는 이전까지 즐기기 어려웠던 맥주를 대중화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비아 허이는 단기간(7~10일)에 양조되며 병이나 캔 등의 포장과 유통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다. 제작 과정 또한 단축하여 살균과정이 없어 유효기간이 짧다. 하지만 마시는 속도가 더 빠르므로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가장 클래식한
‘비아허이’의 구성

(클래식한 맥주컵과 안주의 모습)

갓 나온 생맥주에 얼음을 띄우는 것은 무더운 날씨에 조금이라도 더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고자 하는 임시방편이었다. 현재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냉장 보관이 되는 맥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택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독특한 맥주 음용 문화 때문에 맥주와 가까운 유럽인들도 하노이 거리 목욕탕 의자에 옹기종기 앉아 맥주를 마신다고.

얼음을 넣으면 도수와 맛이 떨어지지 않냐고? 베트남에서 맥주의 라이벌은 다른 술들이 아니다. 오히려 술들은 도수가 높아 몸을 덥게 만든다. 더운 날씨 아래 전기장판을 켜는 격이랄까. 이곳의 맥주는 물과 경쟁하는 시원하고 맛있는 음료였다(때문에 에일보다는 라거가 대부분이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저렴하다. 비아 허이의 타이틀 중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맥주’다. 지난해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맥주가 싼 도시의 1, 2위가 하노이(약 1,098원), 2위 호찌민(약 1,215원) 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비아 허이는 한국 돈으로 300~500원이면 마실 수 있는 맥주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은 ‘사이공 맥주’와
‘하노이 맥주’로 나눌 수 있다

(베트남은 지역맥주 부심이 강하다)

‘비아 허이’ 뿐만이 아니다. 베트남에는 (프랑스가 만들어 놓고 부셔놓고 간) 맥주공장들이 존재한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맥주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남부 지방 호찌민을 대표하는 사이공 맥주의 333맥주. 그리고 북부지방 하노이를 대표하는 하노이 맥주다.

가장 많이 판매되는 맥주는 ‘’333맥주’, ‘사이공 맥주’를 판매하는 ‘사베코(SABECO, Saigon Alcohol Beer and Beverages Corporation)’다. 1893년 프랑스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원래 이름은 33맥주였다. 하지만 1975년 약 100년을 앞둔 과정에서 3을 하나 더 추가했다. 베트남에서 ‘바바바’라고 부른다(바는 숫자 3을 부르는 말). 가볍고 청량감이 좋아 베트남의 날씨나 음식에 잘 어울리는 맥주다.

북부지방으로 넘어가면 맥주의 스타일이 조금 달라진다. 바로 하노이의 상징 ‘하노이 맥주’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맥주회사는 하베코(HABECO, Hanoi Beer Alcohol and Beverage Joint Stock Corp)다. 1890년 프랑스가 지은 호멜 브루워리(Hommel Brewery)가 모태이며 아까 말했던 프랑스가 철수하기 전에 양조장을 부셔서 체코 전문가를 모셨다는 그곳이다. 이곳의 특징은 체코의 홉을 활용한 약간 쌉쌀한 맥주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중부지방인 다낭의 ‘라루(Lalue)’는 여러 향을 첨가한 맥주로 유명하며, 후에지역은 ‘후다(Huda)’라는 라거맥주가 유명하다. 반즈엉은 조록 맥주까지. 베트남은 지역마다 선호하는 맥주가 다르다. 맥주계의 야인시대라고 할까? 그 지역의 맥주를 마셔야 그곳을 충분히 느꼈다고 볼 수 있다.


맥주, 식민의 역사에서
기회의 발판으로

(맥주, 얼음, 노상, 성공적)

한때는 식민지 역사 아래에서 탄생한 가슴 아픈 역사의 맛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매개체가 되었고, 지역을 대표하고, 각종 맥주대회에서 수상을 한 맥주들이 탄생했다.

현재 베트남은 세계의 유명 맥주 회사들이 가장 진출하고 싶어 하는 국가가 되었다. 빠른 도시화와 젊은 평균 연령, 무엇보다 한 번 맛보면 맥주를 멈출 수 없는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길거리 음식문화 때문이다. 오늘도 베트남에서는 더운 날씨를 식히기 위해, 삶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혹은 축구를 보기 위해 거리에 모여 맥주를 마신다.

거리는 술집이고, 사람들의 소음은 듣기 좋은 음악이 된다. (아직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얼음이 들어가면 어때?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함인데. 오후 4시가 외치면 플라스틱 의자를 두고 “못 하이 바 요!(하나, 둘, 셋, 예!)”를 외친다.

우리가 마시는 음료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녹아있다. 베트남에 간다면 한 번 외쳐 보자.

“아이스 아메리카노 말고, 아이스 맥주 주세요!”

  • 해당 원고는 VEYOND MAGAZINE에 기고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VEYOND’는 베트남을 거점으로 세계 각국에서 성공신화를 건설하고 있는 대원 칸타빌의 베트남 전문 매거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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