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브랜드 이름 부럽지 않은 한글 음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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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맛있는 음료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름도 한식, 양식으로 나눌 수 있나?”

작명을 할 때가 있으면 언제나 국어사전보다 영어사전을 펼쳤다. 만화를 그린다거나, 홈페이지를 만들 때 언제나 첫 번째 고려대상은 작명이었다. 나이키, 애플, 파타고니아… 이름만 들어도 멋진 기분이 드는 브랜드들이 있잖아. 괜스레 그런 것들을 선망했던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니 ‘이름’은 더더욱 중요한 요소였다. 이름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나 맛, 혹은 가치관을 나타내 주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아무리 내 이름을 원빈으로 바꿔봐도 얼굴은 안원빈 인 것과 같은 이치겠지. 덕분에 외국어에 대한 환상을 무너트리게 되었다.

오늘은 한글날 특집으로 마시즘이 준비했다. 바로 우리말로 지었거나, 한글로 적었을 때 아름다운 음료의 이름 7가지를 뽑아보았다. 세종대왕님 보고 계신가요?!


1. 이제 우린 / 소주

한국사람의 소울드링크 바로 ‘소주’는 이름에 가장 공을 들이는 음료 중 하나다. 특히나 ‘참이슬’과 ‘처음처럼’은 정말 이름 때문에 더 깨끗한 느낌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순위가 바뀌었다. 바로 충청지역의 소주 ‘이제 우린’이다. 이전까지 이름은 ‘O2린’이었다. 산소가 많이 들어있어서 빨리 깬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었다. 이 녀석이 2018년부터 이름은 ‘이제 우린’으로 바꾸게 되었다. 언뜻 ‘O2린’과 폰트나 모습이 비슷해서 이벤트로 바꿔본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로 이름을 ‘이제우린’으로 이름을 바꿔버린 것. 다행히도 지역 손님들은 “린 주세요!”라고 하기 때문에 소통의 어려움이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지역에 있는 기업의 철학을 잘 표현하기도 했고, 뭔가 이걸 함께 마시면 ‘우리’가 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 이름이다.


2. 따옴 / 주스

단지 두 글자로 이렇게 이펙트 있는 오렌지 주스가 될 수 있다니. 이것은 델몬트도 썬키스트도 이뤄내지 못한 위대한 업적이다. ‘따옴’은 말 그대로 자연에서 갓 따왔다는 의미의 순우리말이다. 더 깊게 이야기하면 주스에 인공으로 향이나 첨가물을 넣지 않고 천연만을 넣었다는 이야기도 되겠지.

굳이 이런 생각을 깊게 하지는 않지만 ‘따옴’이라는 두 글자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의미의 압축파일 같은 것. 이러한 이름 덕분에 따옴은 출시 3년 만에 연매출 200억 원을 돌파하며 새로운 강자가 되었다. 제법 익숙하다 싶으면 ‘납작 복숭아’라던지 ‘석류 크랜베리’등이 나와서 신선함이 더 하다.

한글날이 되어 글씨 폰트인 ‘따옴체’까지 나왔으니. 정말 이 센스만은 자연에서 갓 따온 것이 분명하다.


3. 나랑드 사이다 / 탄산음료

마시즘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 이름, 바로 ‘나랑드 사이다’다. 나랑드 사이다는 너와 내가 같이 마신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 ‘나랑 드시지요’의 옛말을 변형했다. 1977년에 나왔으니 제법 역사가 있는 사이다로 갈매기 마크가 있던 나랑드 사이다는 갤럭시와 아이폰 사이에서 ‘블랙베리’를 쓰는 멋짐을 보여줬다. 물론 멋짐만 보여주다가 단종의 아픔ㄷ

‘나랑드 사이다’라는 이름을 지은 강신호 회장이 지은 이름들은 어마어마하다. 박카스, 오란씨, 판피린, 써큐란, 아반떼(… 이것은 선물로 준 이름이라고)까지. 그야말로 음료 작명왕이 아닐까?


4. 마주앙 / 와인

지난 <교황에게 승인받은 한국와인이 있다고?>에서 말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 ‘마주앙’은 순우리말로 작성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당시 국세청에서 술 이름에 외래어를 표기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마주 앉아 즐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마주안’을 처음 제안하였고, 끝음을 낸시랭 느낌으로(?) ‘앙’으로 바꿔 ‘마주앙’이 되었다. 뜻은 한국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어감만 들었을 때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온 와인 같다랄까. 물론 독일 스타일 와인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출시를 해야 하는 마감에 맞춰, 국세청의 규제에 맞춰 기적적인 한글 이름을 만들어 낸 위대한 작명이 아닐까.


5. 이프로 부족할 때 / 이온음료

‘이프로 부족할 때’의 처음 이름은 ‘체내 수분 2% 부족할 때’였다. 몹시 이과적인 이름이었다. 사람의 몸은 70%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2%만 부족해도 갈증을 느낀다(…)라는 명확하고도 구구절절한 느낌의 작명이었다. 일단 주문할 때 이름을 부르기가 어려우니까 좀 빼자.

그래서 ‘체내 수분’이라는 단어를 날렸다. 최종 이름은 ‘이프로 부족할 때’ 뭔지 모르겠지만 이프로가 부족한 것 같은 우리의 삶에 이 제품명이 주는 효과는 대단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사소하지만 크게 아쉬운 결핍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드라마 같은 광고까지 한 몫했다. 그동안 나도 이프로 부족한 게 체내 수분이 아니라 감성 같은 것인 줄 알았으니까. 보았는가 이과. 이것이 문과 작명의 승리다.


6.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 우유, 가공유

이프로 부족할 때에 이어서 참 이름이 긴 음료다. 풀네임으로 부르는 사람은 광고 영상 외에는 본 적이 없고, 보통 ‘이거’ 라거나 ‘저거’ 혹은 ‘바하’라고 부른다. 하지만 2006년 매일유업에서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가 출시되었을 때 우리는 달걀의 밑을 까서 책상에 세운 콜럼버스의 기적을 보는 것과 같았다.

그동안 가공유 시장은 바나나맛 우유의 천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연히 바나나우유는 노란색이어야 한다는 편견에 빠져있었다. 그것은 단지 껍질이었을 뿐 알맹이는 하얀 색깔인데 말이다. 이 음료는 바나나에 대한 재고찰을 하게 만들어주었고, 더불어 상대인 ‘바나나맛 우유’를 저격하기도 했다.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그런데 너는 왜 노랗지?’ 뭐 이런 풀네임이 아니겠는가. 덕분에 바하는 출시 1년 만에 4,000만 개를 파는 능력을 보여준다. 문제는 바나나맛 우유는 1년이면 3억 개가 가뿐히 팔리는 넘사벽이라는 게 문제지만.


7. 마신다 / 먹는샘물

기차에 타면 쉽게 볼 수 있는 생수다. ‘마신다’라는 이름이 너무 당돌하고 어이가 없어서. 이건 사람 이름을 ‘사람’이라고 지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지 않냐… 고 놀리려는 찰나 한국음료 작명왕인 강신호 회장이 지었다는 말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뜻이 있을 거야.

이는 강신호 회장이 아프리카를 다녀온 후 물이 부족한 ‘마시나(Masina)’라는 지역명에서 어원을 가져왔다고 한다. 우리가 흔하게 마시는 물 한 모금에도 소중함과 고마움을 생각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라고 말하니까 뭔가 음료판 탈룰라(놀리고 싶지만 놀릴 수 없는 사연을 가진 것)에 빠졌다.

마.. 마신다 좋은 이름이네. 직관적이고 명료하고 말이지. 아무튼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름이 찰진 한글 음료가 그리워

최근에는 우리말을 사용한 언어유희가 담긴 음료를 많이 보지 못했다. 위에 설명했던 나랑드 사이다나 마주앙 역시 한글로 적힌 것보다 영어 철자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한국사람들이 (나 빼고) 다 영어를 잘해서 그런가?

외국어 이름이 가지는 멋지고 세련된 느낌이 있다면, 우리말을 이용한 제품명들은 정확한 의미와 언어유희의 재미가 함께한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게 한글로 볼 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과연 내년에는 어떤 한글 이름의 음료들을 소개하게 될까?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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