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마시즘 음료대상

2020년은 어떤 반전영화보다 충격적인 한 해였다. 누구도 올해 이렇게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타고난 집돌이였던 코로나형 인재 마시즘에게도 어려운 일이 찾아왔다. 바로 ‘편의점에 신상음료’가 눈에 띄게 줄은 것이다. 이대로 신상음료들이 없어지면 사람들이 물만 마시고, 음료를 찾지 않는 거 아냐?

아니다. 사람들은 올해도 참 많이 마셨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음료를 사는 방법이나 마시는 환경이 달라졌을 뿐이다. 오늘은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도 빛이난 음료들에 대한 소개다.


올해의 이름값 : 코로나 맥주
저는 단지 맥주일 뿐인데

2020년을 압축하는 단어는 코로나다. 안타깝게도 맥주가 아니라 바이러스다. 항간에는 코로나맥주가 “돈을 줄 테니 코로나 바이러스 이름을 버드와이저 바이러스로 바꿔달라”라고 했다는 웃픈 가짜 뉴스가 돌 정도였다. 문제는 바이러스의 악명 때문에 인지도가 알려져서 잘 팔렸다는 것. 더 문제는 생산을 해야 하는데 바이러스 때문에 코로나 맥주공장이 닫혔다는 거.


올해의 셀럽 : 펭수
한국은 이제부터 펭귄의 나라입니다

여기가 한국인지 남극인지 모를 정도로 편의점과 마트에는 펭귄이 가득했다. 코코구미, 비타500 등의 광고를 한 핫한 펭귄 ‘펭수’가 BTS(칠성사이다, 레모나)와 염따(FLEX 소주)를 제치고 올해의 셀럽으로 등극했다. 2019년 말 이육대로 인기의 물이 들어오자 노를 버리고 제트스키에 나로호를 타버렸다. 광고와 방송가를 넘나드는 우주대스타의 탄생! 남은 것은 출마뿐이다. 


올해의 한정판 : 오 드 칠성
마시지 마세요 향기로 만족하세요

칠성사이다는 올해 70주년을 맞이해 여러 변화를 맞이했다. 새로운 맛이 생겼고(복숭아, 청귤), 광고모델이 BTS로 바뀌었고, 무엇보다 굿즈가 굉장히 많이 나왔다. 그중에 최고는 역시 사이다향을 내뿜는 향수 ‘오 드 칠성(Eau De Chilsung)’이다. 판매 시작 후 30분 만에 완판이 되었다. 자랑스럽게도 하나 가지고 있어서 뿌렸더니, 엄마가 사이다 옷에 쏟았냐며 물수건을 들고 올 정도였다. 이럴 거면 그냥 사이다를 뿌리면 되나?


올해의 술은 마셨지만 음주는 안 했 : 칭따오
논알콜릭 맛이 있는 무알콜 맥주의 세계

맛으로 무장한 무알콜 맥주들이 많이 나온 한 해다. 한때는 ‘술은 마시고 싶지만 절대 못 마시는’ 임산부 등이 어쩔 수 없이 마시는 가짜 맥주라는 말이 있었지만, 맛이 괜찮아지니까 음료처럼 즐겁게 마시게 된다. 칭따오 논알콜릭은 올해 나온 무알콜 맥주들 중 가장 맛있게 마신 무알콜 맥주였다. 아침에 마시고, 낮에 마시고, 야근할 때 마셔도 취하 지를 않네(살은 찐다).


올해의 콜라보 : 기네스 와퍼
맥주와 버거의 맛 장인이 만났을 때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술집에 가는 발길이 끊기자 주류업계는 비상이 났다. 남은 것은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각종 콜라보와 패키지로 무장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기네스는 품위 있고 영리한 콜라보를 했다. 버거킹과 함께 콜라보를 하여 ‘검은색 햄버거’를 만든 것. 새까만 햄버거는 자칫 빵 대신 숯불을 넣은 게 아닌가 오해할 수 있는 비주얼이지만 ‘기네스’이기에 수긍이 간다. 추가로 버거킹 매장에서는 기네스 맥주는 못 사서, 기네스를 더 마시고 싶게 한 점도 좋았다. 


올해의 에코 : 아이시스 에코
빨대 다음은 라벨 없애기?

‘환경’은 음료계에서 꼭 풀어야 하는 수능시험과도 같은 문제다. 카페들이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는 것을 넘어 먹는 샘물 아이시스는 라벨마저 없애버렸다. 벌거벗은 임금님 꼴이 날 것이라 생각했으나 반응은 대단했다. 생김새 자체에서 분리수거의 중요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함부로 후발주자가 따라 할 수 없는 것도 덤. 사람들은 이제부터 라벨을 벗긴 생수는 다 아이시스라고 생각할 테니까. 


올해의 탄산음료 : 코카콜라
배달을 함께한 코카콜라를 누가 이겨

마시즘도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지만, 올해는 일반인들도 가장 많이 마신 음료일 것이다. 홈스쿨링, 재택근무 등이 늘어나고 식당에 가지 않으면서 음식을 배달하여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배달음식에는 그리고 훈장처럼 코카콜라가 함께한다. 올 한 해의 탄산음료들은 색다른 매력의 신상보다는 믿고 마실 수 있는(정확하게 말하면 박스채로 사도 부담 없는) 네임드의 시대였다. 밖에 나가지 않는 시대, 여름철 장마 등 탄산음료계의 위기에도 코카콜라는 역시 코카콜라였다.


올해의 루키 : 슈퍼말차 클린
에너지드링크는 미래가 될 수 있을까?

편의점과 마트에서 파는 메이저 음료가 아닌 세계의 음료들은 어떻게 가고 있을까? 많은 부분은 ‘건강’, ‘에너지’를 앞세운 음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링티의 후손이라고 해야 하나. 그중에 슈퍼말차 클린은 돋보이는 상품이었다. 외국음료인 에너지드링크를 동양음료인 말차로 재해석했다. 끔찍한 혼종(말차를 싫어하면 더 싫어할 수 있다)과 창의적인 음료(하지만 독특한 조화를 좋아하면 최고의 음료)의 줄타기는 언제나 환영이니까.


올해의 맥주 : 곰표맥주
음료계의 허니버터칩 곰표가 이룹니다

사실상 올해의 주인공은 수제맥주가 아닐까? 더 이상 편의점에서 해외맥주 칸을 봐도 감흥이 없는 사람들에게 수제맥주들은 수집의 즐거움을 주었다. 그 유행의 선두에는 곰표와 세븐브로이가 함께 한 콜라보 맥주 ‘곰표맥주’가 있다. 연예인도 곰표맥주를 사기 위해 편의점 원정을 다닐 정도였으니까. 임팩트만은 허니버터칩 사건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시즘은 올해 마시고 싶은 음료는 대부분 마셨는데, 이 녀석만은 아직 마셔보지 못하고 있다. 


올해의 커피 : 달고나 커피
홈카페의 시대를 열고 오른팔을 가져가 버리다

커피를 좋아하는 한국사람을 함부로 방 안에 가둬놓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 메뉴다. 인스턴트커피에 설탕과 따뜻한 물을 조금 넣고 400번을 저으면 오른팔을 잃고 음료를 얻는다는 후기 때문에 너도 나도, 외국인들도 참가했다. 문제는 3월에만 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4월을 넘어, 5월… 12월까지 달고나 커피를 만들 줄은 몰랐지.


여러분이 기억하는 2020년의 마실 것은?

시상을 못한 녀석들도 참 많다. 올해는 ‘민트’가 들어간 음료들도 많이 마셨고, 3년째 못 구한다며 푸념을 올렸던 ‘일품진로 한정판’을 선물 받기도 했다. 3년을 기다린 음료를 20분 만에 다 마시다니. 멈출 수 없었던 충격을 어서 리뷰로 전해드리고 싶다.

음료를 사러 가지 못했을 때는 사무실 한 구석에서 계란으로 바나나맛 우유를 가짜로 만들기도 했고, 음료연구실과 공장에도 끌려가고, 여름 동안 음료덕후들과 함께 음료학교에서 신상음료 출시 과정을 함께 해보기도 했다. 누군가가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음료 덕분에 올 한 해도 재미있는 한 해를 보냈다. 이 즐거움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게 마시즘의 내년 목표가 아닐까? 그래서 묻고 싶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2020년의 음료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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