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보다 먼, 전통에는 가까운 술 ‘가양주’

하이네켄도 기네스맥주도
뭐 그 동네의 가양주 아니겠어요?

집안 곳곳, 장롱의 위쪽, 있는 줄도 모를 족보를 물어보는 데는 꿍꿍이가 있다. 뭔가 오늘의 나는 게을렀지만, 이때를 대비해 조상님들이 뭔가 숨겨놨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이랄까. 며칠 전의 마시즘도 열심히 집안을 뒤졌다. 태생적으로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나의 품성으로 봤을 때, 분명 조상님들이 비트코인 아니 술 레시피나 후기라도 남겨놓지 않았을까? 

…는 무슨 참이슬 공병(from. 아빠) 몇 개 찾은 게 함정. 분명히 옛날에는 집집마다 술을 빚는 방법이 있어서, 김장철 김치 담그듯 술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나도 아빠도, 할아버지도 계속 소주만 마셨던 걸까? 


가양주 말살 사건, 
이것은 술이 아닙니다

집에서 빚는 술. 우리는 이것을 ‘가양주(家釀酒)’고 부른다. 조선시대까지 꽃피운 가양주 문화는 일제강점기 때 명맥이 끊기게 된다. 라이센스가 없는 아마추어라면(물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초월 경력이지만) 술을 빚지 못하게 한 것이다. 조선의 아름다운 술 문화가 싫어서? 술을 마시고 행복해하는 우리 민족이 싫어서? 아니다. 모든 문제는 세금 때문이었다.

(가문의 이름을 건 술들, 이것이야 말로 가양주의 멋진 미래가 아닐까)

조선총독부에서는 판매되는 술에 세금을 부여했다. 일부 허가를 내준 술도가에게는 세금을 걷었다. 1930년대 조선총독부 수입의 30%가 술에서 나온 세금이었다고. 때문에 ‘나라를 잃은 슬픔으로 마신 술이 일제의 호주머니를 채운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나라도 술도 없는 1+1의 슬픔 패키지라니. 

독립이 되었다. 드디어 가양주의 시대가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1965년 ‘양곡 보호령’이 생겼다. 간단히 말하자면 밥 먹을 쌀을 술을 만드는데 쓰지 말라는 것. 한국에서 전통으로 내려오는 술(아니 아시아로 넓혀봐도)의 재료는 대부분 ‘쌀’인데. 이것은 발은 쓰지 말고 축구를 하라는 말이었다. 덕분에 가양주의 전통을 지키는 이들은 모두 밀주 제조가가 되었다. 그럼 사람들은 어떤 술을 먹었냐고? 소주 마셨지 뭐.


사라지고 숨겨진
가양주 레시피를 찾아서

시간이 지나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술에 대한 필요성이 오르내렸다. 국가대표 스포츠 선수는 있는데, 국가를 대표할 술은 없다는 것. 때문에 주세법을 개정해 ‘민속주’라는 부분을 만들었다. 1990년에는 쌀을 원료로 술을 만들 수 있게 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마실 수는 있지만 팔거나 사지는 말 것’.

하지만 이런 탄압에도 술을 사랑하는 덕후들은 있는 법. 특히 조정형 명인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25년 동안 소주회사를 다니면서 사라져 버린 가양주와 전통주를 조사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구글검색…은 없었던 시기니까 서울대 규장각에 가서 ‘술 주(酒)’자가 쓰여있는 자료는 모두 복사했다고 한다. 또 세간에 밀주를 만든다는 소문이 들리면 먼저 달려가서 맛보고 취재를 했는데, 간첩으로 신고당하기도 했다고.

(1991년 ‘다시 찾아야 할 우리의 술’을 보면 이 고생들이 재미있게 나온다).

신제품을 연구하러 갔다가 전통주를 연구하게된 그는 결국 ‘가양주’를 사업화한다. 본인의 집안에 내려오던 가양주인 ‘전주의 이강주’를 만든 것. 조정현 명인뿐만 아니다. (밀주라는 오명에도) 가양주를 계승하고 전통주를 복원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결국 이강주와 문배술, 안동소주는 ‘전통주’로 공식 인정을 받아 전국 판매가 된다. 

(안동소주, 이강주, 문배술 가양주 시대를 연 트로이카)


한때는 밀주였던 것이 이제는 격식과 고급을 차린 술이 된 것이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마시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전통소주보다 소주가 더 일상적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 벽을 이렇게 깰 줄은 몰랐지.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젊다,
레트로와 전통의 만남

한때는 민속주, 한때는 지역주, 이제는 ‘전통주’로 이름이 계속 바뀌며 관리가 되었다. 전체 주류시장의 규모는 줄어들고 있었지만(2016년 9조 2,961억원에서 2018년 9조 394억원), 같은기간 전통주 시장의 규모는 397억원에서 456억원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한차례 유통망 변화가 생겼다. 바로 전통주가 ‘온라인’에서 판매가 허용된 것. 그리고 ‘코로나’로 온라인 판매량이 판매채널마다 2배 가량이 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바탕으로 전통주구독을 하는 서비스도 생겨났다)

물론 전체 주류판매량에 비교하면 작은 규모이긴 하다. 하지만 편의점, 마트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술들을 방안에서 주문만 하면 마셔볼 수 있다는 것은 마시즘 같은 술덕후에게는 큰 메리트였다. 메신저 선물하기를 사용할 수도 있고, 네이버 스토어를 이용할 수도 있다. 심지어 라이브 커머스로 재미있게 전통주를 소개하고 판매를 하기도.

(탄산과 브랜딩에 진심인 복순도가, 광고 속 그 녀석 한강주조 나루생막걸리)

제품적인 느낌도 변했다. 이전의 전통주들이 ‘사라진 가양주를 발굴하고 명맥을 이어가게 한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다음 세대들의 느낌은 ‘젊고 세련된 브랜딩’이다. 심리적 가격이 1,500원 안팎이었던 막걸리를 1만 2,000원 수준으로 올린 막걸리 샴페인 ‘복순도가’가 상징적이다. 그 뒤 고급스러운 패키지에 MZ세대의 마음을 휘어잡는 컨셉의 전통주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가양주’ 뿐만 아니라 지역의 농산물을 사용해 만드는 술들도 ‘전통주’의 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더욱 가능성이 넓어졌다. 이름에 와인, 진… 등의 이름이 붙는데 왜 전통주냐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뭐 이렇게 만드는 술을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준다면 그것도 나름 전통이고 가양주니까…라고 하면 너무 행복 회로를 돌리는 것일까.

(재미있는 느낌의 전통주들이 늘어났다)

술의 컨셉과 디자인을 크리에이티브해지고, 전통주를 판매하는 매장과 채널들도 변했다. 막걸리만 전통주인 줄 알았던 젊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경험과 같은 제품이 된 것이다. 이 사이에서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젊은 전통주 칼럼니스트나 전통주 소믈리에들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거의 조선시대 이후 최고로 전통주와 가양주가 주목받는 시기 아닐까. 


이야기가 있는 술,
가양주는 꽃이 필까?

외국의 이름 있는 위스키, 맥주, 와인이 부러운 것은 맛뿐만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만들어지고 사람들과 호흡하며 나온 이야기들이 제품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술을 빚다 만들어진 썰. 홈메이드 술. 가양주(를 비롯한 전통주)이런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줄 술이 아닐까?

최근 폭발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하지만 마시면서 즐거울 수 있는 새로운 술들의 등장이 우리의 술자리를 빛내기를 기대한다.  

  • 참고문헌
  •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명욱, 박하, 2018
  • ‘술 권하는 정부’면 또 어떤가?, 이동필, 프레시안, 2007.5.18
  • [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43 <끝>] 안동소주, 김봉규, 영남일보, 2016.2.11
  • 가양주가 새로운 쌀 소비 방안이다, 이대형, 2019.6.15
  • 집에서 빚는 술 가양주에 대하여, 김기엽, 옥천신문. 2019.7.31
  • [김민경 ‘맛 이야기’] 계절의 벗 가양주가 돌아왔다, 김민경, 신동아, 2020.4.4
  • 전통주, 밀레니얼 세대의 인기 얻고 구독자 3배 증가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명욱, 주간동아, 2020.6.23
  • [박순욱의 술기행](38) “조선 3대 명주, 이강주가 확 달라졌어요”, 박순욱, 조선비즈, 2020.11.12
  • 안동 옛 조리서 ‘음식절조’ 발견 술 제조법도 기록, 엄재진, 매일신문. 2020.11.25
  • 집콕·혼술족 늘자…전통주 온라인 판매 대박났네, 김무연, 이데일리, 2020.11.26
  • 2020년 마지막 날 전통주를 정리해본다, 이대형, 2020.12.31
  • 종갓집 수리하다 찾은 전통주 비법…술 빚는 ‘청년농부’, 김호준, 이데일리, 202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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